슬픔 말고 기쁨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나의 아름다운 친구들이여...
나는 어렵지 않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배려심이나 양보심을 크게 강요받지 않고 자라왔다. 그렇게 자란 게 썩 자랑거리가 아니란 것도 아이를 낳고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고서야 체감하였으니, 인성은 타고나는 것보다 만들어지는 부분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자기중심적이고 직설적인 내 성질을 잘 받아준 친구들이 감사하게도 꽤 많다. 초/중학교 친구들은 세월에 묻혀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이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내 인생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데, 이들이 신기한 게 참으로 다들 잘났다. 우리 학교는 남쪽나라 대구시에서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 여고였는데, 당시에 우리 동창들이 공부를 잘했었다. 선생님들과의 합도 좋았고 분위기도 굉장히 학구적이고, 아이들의 자존감이 다들 남달랐던 것 같다. 나도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가서 수학과 과학 앞에 좌절하고 등수가 한없이 밀려난 케이스이다. 그럼에도 주위 친구들은 공부를 잘했어서 경쟁심을 느낄 새도 없이 넘사벽 실력자들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40대 중반이 되고 보니,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거의 성적순, 학교순이 맞더라. 그게 억울하지 않은 것이, '성적'이란 것은 노력과 성실 앞에서 참으로 정직하단 것을 알기 때문에. 찬란한 고교 (+대학) 시절을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에 빠져 산 우리들의 (나도 포함하자!) 결과물이 아름답게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치열하게 공부했었고, 시험 성적을 앞에 두고 때로는 환희하고 때로는 절망했었지. 그때 우리들의 열정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실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들은 지금 의사, 한의사, 변호사, 외교관, 교사, 금융업권 종사자, 심리 상담사 등 너무나 다양하게 각자의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고, 배우자들도 하나같이 다들 건실해서, 만나면 뭔지 모를 든든함을 느낀다. (물론 한참 여러 가지 이유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엄마로서 와이프로서 200점의 삶을 사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참 많이 배운다.)
나도 어딜 가서 무시당하는 직업은 아니었으나, 퇴직을 앞두고 남편의 피부양자인 비경제인이 된다는 것에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만난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나 퇴직날 받았다고 말하는데, 뭔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역시나 쿨한 내 친구들은 눈빛 몇 번으로 나를 안심시킨다. 나의 상황과 변화를 잘 알기에, 격려해 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준다. 내가 부모님께 하듯 꽁꽁거려도 달래고 얼러주는 내 사랑스러운 친구들. 나의 가볍고 또 무거운 근심을 함께 나누어 주는 친구들. 정말 고맙다.
누가 슬픈 일을 당하면 위로하기는 참 쉽다. 남의 아픔 앞에서 내 상황을 안도하는 것이 훌륭한 일은 아니라지만, '나는 그런 일 당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라며 조용히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친구들은 나에게 닥친 아픔을 진정으로 보듬어 주고, 나는 그녀들의 기쁨도 진정으로 공감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지만, 이 친구들이 땅을 사면 나도 같이 배불러지는 기분. 아마 긴 세월과 나눔의 결과이겠지. 계속해서 우리 함께 세월을 걸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