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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Dec 21. 2023

퇴직 후 첫 공연

강추위 뚫고 음악 감상

지금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지만, 내 음악 사랑의 시작은 단연코 영화음악이었다. 여고생 시절, 새벽에 공부한단 핑계로 늦게까지 깨어서 FM라디오의 "배유정의 영화음악"을 들으며 내 지금 감성의 팔 할을 완성시켰다.  


나도 배유정 DJ처럼 음악과 영화에 조예가 깊은 지성인이 되고 싶었고, 그녀의 직업인 통역사가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Calling You' 라던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Funny Face'의 ost, 영화 'Taxi'나 'Dear Hunter'의 메인 테마 등, 익숙하지만 영화음악인지 몰랐던 많은 곡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샤인'이나 '아마데우스'를 보며 라흐마니노프나 모차르트를 더 가까이 접하고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영화음악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 세계(?)에서는 첨언이 필요 없는 작곡가라, 3년 전 이 거장의 서거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상실감과 슬픔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인 Cinema Paradiso와 Love Affair의 OST는 아직도 내 책장에 고이 간직되어 있건만... 너무 들여다 보아 너덜거리는 CD 재킷에는 그의 음악에 대한 어린 내 애정이 아직도  스며있는데...




매달 한 번씩 있는 성남 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의 12월 주제가 "시네마 천국"이란 것을 알고, 표를 구하려고 엄청 노력했었다. 공식 퇴직 후 첫 '관람 가능한' 평일 오전 공연인데, 무려 엔니오 모리코네라니. 드디어  자리 취소분이 나왔을 때 그 기쁨이란...


그리하여, 너도 나도 춥다고 하는 북극 수준의 추위를 뚫고서 그를 만나고 왔다.


1부는 주말 클래식 FM, '송영훈의 가정음악'의 진행자인 첼리스트 송영훈 씨가 협연자로 등장하여, 마치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첼로 연주를 직접 들으니 너무 좋았다. 생소했던 또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인 니노 로타의 첫 실연을 접하게 되어 의미 있었다.


2부, 드디어 기다리던 영화음악 순서.

미션의 가브리엘 오보에,

시네마 파라디소의 러브 테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프리카의 메인 테마,

러브 어페어의 메인 테마....

모든 곡들이 눈, 귀와 마음으로 들어오는데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몰려왔다. 특히, 마지막 러브 어페어의 피아노 솔로의 깜짝 연주에서, 아네트 베닝의 촉촉이 젖은 눈망울이 김태형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모습과 오버랩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순식간에 맺혀버린 눈물이 제자리를 못 찾아 뺨을 타고 흘러내려 버렸고, 오케스트라와 협주 부분에서는 목놓아 울 뻔했다.


감각은 힘이 강하다. 어떤 곳에서 나는 향기나 그곳의 색채, 그리고 어느 순간의 공기...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당시 내 기분과 기억과, 그 계절 등, 많은 것이 혼합되어 느껴지는 "울림" 같은 것이 아닐까.


추운 날, 따뜻한 사람들에 둘러싸여서도, 혼자 음악 들으러 올 수 있는 내 환경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아직 생생히 살아있는 내 감성과 예민한 감각에 대해 뿌듯함도 느껴졌으며, 간직하고 있는 좋은 추억이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생각되었다.




돌아오는 길, 감기로 투병 중인 남편에게 연락하는 내 목소리가 밝게 느껴진다. 2024년 마티네 콘서트의 주제가 "체코"라는데,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의 실연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작은 마음 두근두근. 나의 새내기 퇴직 인생이 좋은 음악과 함께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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