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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n 15. 2021

좋아한 게 아니라 부러워한 거였네…

많이들 그러겠지만 앞가림하느라 정신없어지면 최신 유행 곡도 요즘 가수도 모르고 살게 된다. 삐뚤어진 시각으로 말하자면, 명품 옷과 가방이 가득한 건물주들의 노래는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인 내 삶에 더이상 그 어떤 감흥과 위로를 주지 않았다. 또한 열과 성의를 다해 좋아해 봤자 이력서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켜켜이 쌓여있는 내 대출금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경험해봤으니까.  


 요새 빌보드를 씹어 먹고 있는 보이 그룹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같이 일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얘기 들어보니 유명 패스트푸드점 최초로 그 그룹과의 협업으로 전 세계에 세트메뉴가 판매되는 것도 그렇고, 현지 라디오에서 심심치 않게 그들의 노래들이 나오는 거 보니 이게 바로 국위선양이구나 싶긴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주위에서 하도 얘기를 해대길래 관심 갖다가 한두 달 열심히 덕질을 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노래도 듣고 그들의 자체 예능프로그램도 열심히 찾아보고, 팬들이 만든 멤버들 간의 케미를 보여주는 영상들을 집에만 오면 찾아보곤 했었다.

노래도 가사도 너무 좋고 심지어 이 친구들이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들 같지 않게 수더분하고 착해서 멤버들 간에 사이도 엄청 좋은가 보다. 학교나 회사에서 종종 있는 그룹 미션에서 팀 분위기가 좋으면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냈었던 경험으로 보면 이들의 성공이 예견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참한 친구들의 노래나 영상들을 접하고 나면 기분이 우울해졌다. 꿈과 희망과 더불어 love yourself 까지 노래하는데도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 수록 나는 점점 답답하고 슬퍼졌다. 일부 연예인들처럼 허세를 부린다 거나 실망스러운 언행을 한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콩깍지가 씌워져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친구들의 둘째가라면 서러울 멤버들 간의 사이좋음이 드러나는 예능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부러워하는 거였네.  


내 미래보다 밝은 이 친구들의 웃음을 보면서 나는 이토록 서로를 잘 알고, 서로가 서로를 빛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이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나는 뭐 하고 있었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부와 명예를 얻는 것도 부러웠지만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누구보다 자신을 알아주고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몇 없는 아는 한국인을 만났다. 학교를 졸업하고 영주권 때문에 유학원과 법무사들을 찾아다니며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시기였는데 나이 때문에 걱정하던 나에게 관계자들은 오랜만에 괜찮은 스펙을 봤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역시 영주권을 준비하는 그녀도 내가 여기저기 상담받으러 다닌 것을 알고 어땠냐고 묻길래 ‘이 정도면 괜찮은 스펙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더니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가 스펙이 좋은 게 뭐가 있는데?”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물론 그녀의 의중은 나의 어떤 부분이 영주권에 유리한 거냐고 궁금해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의중이나 진심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가 않다.

저런 식의 화법을 농담이라 여기고 넘어갈 정도로 친하지도 않고, 나와 친했다면 더더욱 하지 않았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닥치고 긍정’을 추구하는 여전히 몇 안 되는 또 다른 한국인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부류’ 라 심플한 사람들이 부럽기는 해도 친해지기는 좀 어렵다. 이 친구는 본인이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일부러 더 하려고 한다는데 그 방법이 나와 좀 맞지 않아서 대화가 진행이 되지 않은 적이 왕왕 있다.


그: 요새 운동 열심히 하네?

나:  나이 드니까 주름도 생기고 기운도 달려서 운동해야겠더라고.

그: 되게 부정적이네.

나: 왜? 뭐가? 어디가 부정적이야?

그: 무슨 주름이 생겨?

나: 나이 들어서 주름 생기는 게 어때서 당연한 거지.

그: 됐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단순히 주름이 있으면 부정적이고 없으면 긍정적이라는 건가…

아마 이 친구는 이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의 본질은 외면당하고 핵심을 잃은 대화를 꾸역꾸역 이어나가기 위해 속뜻을 굳이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는 진작에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이 있다.

나는 주로 아침 5시, 6시 출근을 한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에 근무를 해서 쉬는 날 알람 없이 자는 것이 아침잠 많은 내가 일주일을 버티는 기다림 중에 하나이다. 그런 나의 쉬는 날에 오전 약속을 잡으려 하길래 30분 정도 더 늦추자고 했다.


그: 부지런하게 좀 살아.

나: 쉬는 날은 좀 여유를 가져봐.

그: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게으른 거 말이야.

나: 일 가고 학교 가면 맨날 새벽이나 아침에 나가는데 쉬는 날 느긋하고 싶은 거 가지고 되게 그러네.

그: 죽으면 평생 쉬어. 나도 요즘 새벽에 일어나. 본인만 그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아온 걸까...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라고 한다면 그건 인정. 그나마 알게 된 한국인들과 이런 식의 대화를 하면 몇 마디 하지 못하고 결국 후회를 한다. 영어가 대단히 편한 게 아닌 상태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영어로 계속 이어가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모국어를 하는 사람 누구든 만나면 대화가 잘 통할 거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한국말은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으니 적적함에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부름에 응하게 된다.  그리고 헤어지고 나면 한국어를 했지만 안 하니만 못하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만나기 전보다 더 외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혼자 이기를 택했다. (그리고 여기다 이러고 있지.)


어린 시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깔깔거리던 그 시절, 그 친구들 정도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너어어어무 어려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인 무리들과 한국식의 유머를 주고받으며 박장대소를 하며 이야기하던 것이 너무 그립다.


그래서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보다. 마음 놓고 장난치고, 마음 놓고 터놓을 수 있는 멤버들이 일곱 명이나 있는 그들이 너무 부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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