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Jul 06. 2021

좋은 사람인 님이 내 사람이 아닌   이유

좋은 사람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이미 호주에서 영주권도 받았고 하는 분야에서 잘 자리 잡고 있는 건실한 청년이라고 했다.


만나기 전날, 그분에게서 문자가 왔다. 혹시 본인이 미리 나에게 언급하라고 한 두 가지 정보에 대해서 들었는지 확인하는 문자였다. 나는 들은 바가 없었고 중요한 거냐는 내 물음에 본인에게는 중요하다면서 그 두 가지 부분본인의 키와 외모가 평균 이하라는 이라고 말해주었다.


‘내 사진을 봤나?’

‘이거 지금 내가 취소 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만나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만나 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자신을 평균 이하라고 설명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가 지금 소중한 마스크팩을 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키와 외모에 대해 미리 알았으면 하는 이유에 대해 장문의 문자로 친히 보내주었다. 문자내용은 대충 키나 외모가 다는 아니지만 가끔 전부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한다는 것이었다.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니라면서…


“ 아 뭐 저는 평범합니다. 저에 대해서도 큰 기대하지 마세요. 일단 힐은 안 신고 뵐께요 :).”


적지 않게 당황을 했지만 적당히 넘기고 다음 날 그분을 만났다.


“ 남자치고는 좀 작죠?. 그래서 제가 소개해주는 분께 미리 말씀드리라고 한 건데 전달이 안됐나 보네요.”


내가 문자로 상관없다고 얘기했음에도 만나자마자 다시 키 얘기로 첫인사를 여시 더니, 내가 “나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해도 된다.”고 육성으로도 또 얘기를 해도 또다시 키와 외모 얘기로 첫 대화를 열고 30분가량을 설명했다. 여전히 콤플렉스는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래… 아주 솔직히 이왕이면 나보다 큰 사람을 선호하기는 하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왕’ 일뿐, 다른 좋은 점들 다 놔두고 본인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키 하나 때문에 사람을 잃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나는 뭐 누구를 평가할 주제가 되나? 아니 누구든 누구의 외모를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은 없지.  )


그렇게 겨우 외모에서 벗어난 그분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나름 열심히 살아온 분이시길래,

“외국 회사에서 상사들과 동료들에게 인정받으시고 대단하시네요.”라고 맞장구를 치면

“어후 아니에요. 제가 잘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요… “ 라면서 본인을 극구 낮추셨다.


운동을 이것저것 관심 갖고 많이 하시길래,

“바쁘실텐데 틈틈이 운동도 하시고 부지런하시네요.”라고 응수하면

“아니에요. 그렇다고 잘하는 건 아니에요.” 라면서 또 굳이 겸손하게 말씀하신다.


(님, 저 마음에 안들죠? ㅠㅠ)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나는 키도 외모도 평균 이하이고, 일도 운동도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을 만나겠다고 꾸역꾸역 시간을 낸 것이다. 유학파이면서 호주에서는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IT회사에서 이직하는 상사들에게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만큼 실력 있는 인재로 본인 능력으로 영주권 취득하고 본인의 지적, 체력적 호기심도 다양하게 채우며 열심히 사는 분이 스스로를 전혀 다른 찌질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사실 나에게는 키가 딱 나만한 아주 친한 20년 지기 남사친이 있다. 근데 워낙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라 키나 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그 친구 자체가 그동안 키나 외모에 대한 얘기를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어서 이번 일을 겪고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그 친구는 예상했던 대로 자신이 취업하고 연애를 하는데 본인의 키나 외모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멋있었다. 이래서 내 친구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


아픔이 있는 듯했다.

나에게는 콤플렉스가 아니라고 내내 얘기했지만 차라리 콤플렉스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았을 수도 있었을 만큼 애처롭게 본인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여주는 듯했다.


괜찮지 않은 나의 모습을 먼저 내보이면 내가 괜찮게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나도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콤플렉스를 극복한 쿨한 사람으로 비춰지길 기대하면서 캐캐 묵은 나의 단점들을 남들이 알아채기 전에 지레 내가 먼저 드러낸 적이 있었다. 여전히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주길 희망하면서…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을 기다리면서…


내가 극복하지 못한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나면 청량감을 맛볼 것이란 기대와는 반대로 어김없이 기분이 찜찜했다. 마지못해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영 와닿지 않았고 쿨한 척 보이려 사람들이 속으로나 생각했을지 안 했을지도 모를 일을 구태여 끄집어낸 나 혼자 애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구구절절해지지 않기로 하려고 했다. 물론 콤플렉스도 콤플렉스 나름이겠지만 평소에 약점이라고 느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듯이 내가 극복을 했건 안 했건, 머릿속을 좀 간단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단지 나에게는 키와 외모가 아니었을 뿐.


결과적으로 나는 그분의 애프터 신청에 응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의 장점을 찾으려고 하는 나를 거절한 그분의 자신감을 거절한 것이었다. 아무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에게는 키와 외모 때문에 상처를 준 또 다른 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선택이 아니었던 키와 외모에 갇혀 갈 길을 잃은 그분의 장점들을 자상하게 일깨워 줄 만한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겸손을 넘치게 뒤집어쓴 채 떠오를 줄 모르는 그 분의 애잔한 자신감을 친절하게 끌어올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 나도 나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If I have lost confidence in myself, I have the universe against me.”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한 게 아니라 부러워한 거였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