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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l 10. 2021

연애 고자의 시간은 누구보다 빨리 간다.

지난주 락다운의 여파로 이번 주에 예정되어있던 모든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어 호텔 투숙객수가 한자리가 되는 바람에 ‘의사는 물어봤지만 답은 정해져 있는’ 반강제 휴가가 주어졌다. 사실 요새 일하면서 권태기 비슷한 그런 게 있었어서 나는 비교적 기꺼이 휴가를 받아들인 편이다.

짐 싸서 어디든 떠나 볼까도 했으나 시기도 시기고 해서 늘어지게 게으름 피우는 향유를 즐기는 것을 이번 휴가의 목표로 삼았다. 생각해 보니 작년 코로나 시작 때 전체 락다운 때문에 2주 쉬었던 것 빼고는 (그때는 학생 신분이라 공부는 해야 했으니)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긴 휴가는 2018년 10월 이후 처음인 듯.



그 동안 속도를 못 내고 있었던 미드, 영드에 빠져있다가 한국 드라마만 보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속절없이 폐인이 되었다.

(내가 한국 드라마의 재미를 몰라서 안보는 게 아니었거든,이럴 줄 너무 알았기 때문이지… 한국 드라마는 너무 위험해… )


해를 품은 달’이었다.

나의 밤을 지새우고 이 7일 백수 생활의 이틀을 깔끔하게 날려버린 그 이름.

나에게 이번 드라마의 핵심은 1회부터 5회까지, 연우와 이훤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다양한 사랑 얘기들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유독 청소년기나 대학생들의 첫사랑이나 ‘풋풋’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로맨스를 다룬 이야기들에 정신을 못 차리는 편이다. 글쎄… 이제는 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너와서 그런 걸까?  


내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다들 한 번씩은 해본다는 이성교제 중인 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되게 성가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왜 이 많은 친구들 놔두고 둘이만 놀아?’

‘나는 남자 친구 아니어도 같이 놀 친구들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뭘 또… ‘


그 부질없는 생각들이 다 개똥이었다는 것을 그땐 미처 모르고…



나의 연애사업에서 굳이 영화 소재를 찾고자 한다면, 초4 때 한창 추리소설에 빠져 있을 때 마침 같은 장르를 좋아하던 같은 반 남학생이 있었다. 책 얘기를 하다가 각자에게 서로가 읽지 않은 추리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꿔보기로 했었다. 서로 독후감을 가장한 편지까지 책 속에 넣어주면서…(아..나에게도 이런 적이 있었다니...) 방학이 되면서 학교에서 주고받을 수 없으니 서로의 아파트 우편함에 책을 넣어 주는 열정을 보이며 독서인지 펜팔인지, 사랑의 시작인지 망상의 시작인지 모르겠는 이 일에 어쨌든 열심이었다. 그러다가 서로의 책을 다 보고, 학년이 바뀌고 다른 반이 됨과 동시에 그 친구가 사춘기가 오면서 여자를 멀리하게 되는 성격으로 변하게 되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잊혀졌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온 내 베프를 통해 우연히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되었다. 영화같은 우연에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처럼 바람직하게 잘 자란 그 친구와 영화도 보고 콘서트도 가면서 썸일 수도 있는 만남을 이어가다가 결혼을 했다. 라고 마침표를 찍으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해피엔딩 로맨스 영화 한 편이 완성이 되는 건데 현실은 호락호락하지가 않지. 그 친구만 했다…다른 여자분과..

관계를 매듭지을 결정적인 것이 없었고 중간에 흐지부지 되는 시간을 거쳐, 나는 뉴질랜드로 그 친구는 또 다른 나라로 바다를 건너는 상황이 생기면서 나의 로맨스 영화도 함께 물 건너갔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후의 나의 연애사에서는 눈을 씻고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찾아봐도 그 어떤 애절함이나, 애틋함 따위는 없는데 유일한 나의 풋풋함의 결말이 너무 견고하게 닫혀 버려서 짜증이 날 지경.  


나는 뭐했나...?


저 고운 13살의 이훤은 비만 내리면 연우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짖으며 저리도 그리워하는데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나기든 장마든, 천둥번개가 쳐도 그리운 지난 연인이 없다. 모두가 다 하나같이 잘 헤어졌어. (약간 아쉬운 인연이 있기는 한데 다시 돌아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너무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친구들이랑 동네방네 뛰어놀며 시커멓게 타느라 외모 암흑기를 보낼 동안 연우와 훤은 ‘잊으려 하였으나 잊지 못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별 소득 없는 나의 연애에서 나이 서른을 훌쩍 넘어선 지금까지도 나는 마음이 말하는 대로 누군가에게 “사랑해 “라고 말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랑이 뭔지는 알고?)

나의 젊음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뭐 대단한 해탈인 양 지내온 시절에, 정작 주위 뿐만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남자들의 젊음 또한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 아까운 시간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서른 중반의 사랑, 마흔의 사랑이 또 있다고는 하지만 연애가 이십 대 만큼 쉽지 않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데... 불같은 사랑, 전쟁 같은 사랑도 해보지 못하고 이삼십 대를 보내 버렸다. 굳이 이제 와서 사랑으로 불을 내고 싶지도,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지만 연애를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후회가 없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말할 만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미련에 지지부진한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울 필요 없다는 것을 위안 삼아 다가오는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은 그만 일찍 자자.


어머니께서 나를 위한 54일 기도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A man 아, 아니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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