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Jul 21. 2021

나도 꼰대가 되긴 싫었어

가깝고도 먼 외국에서 만난 한국인

누울 곳을 정하고 앞만 보고 가기에도 벅찬 나이, 새로운 도전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그런 나이.

학교를 갈 나이거나, 워홀을 다녀도 ‘젊은이스럽다’ 소릴 들을 때를 훌쩍 넘긴 내 나이가 좀 애매한 포지션이다 보니 외국에서 또래를 만나기가 참 쉽지가 않다. 같은 나이는 고사하고 한두 살 차이 나는 사람도 하늘에 별따기. 그래서 학교든, 회사든, 길거리든 만나게 되는 한국인들은 웬만하면 나보다 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쉽고 덜 상처 받는다.


나보다 11살이 어린 친구를 일하는 곳에서 만났다. 일하는 곳에서 만났고 같은 학교, 같은 과 졸업생이었고 공통분모가 분명히 있었는데 이상하게 불편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런가… 그 친구는 (전 남친 피셜) 군대 안 다녀온 남자들이 좋아할 외모 여서 주위 남자들이 다 떠받들어 줘서 인지 다른 친구들과 같이 어울릴 때도 본인이 원하는 곳을 가지 않으면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본인이 관심 있거나 본인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이들 얘기에는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대화를 같이 하다 보면 그 친구는 본인 인기 자랑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묻지도 않은 내 얘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바로 인터셉트당할 거 같아 우리의 만남에는 항상 다른 동료들이 있었다.


어쩌다 단둘 있게 된 어느 날, 내가 뭔가 사줘야 하는 고민에 휩싸여 엄청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정작 그 친구는 내가 사줘도 그만 안 사줘도 그만이었던 거 같은데 나 혼자 지레 ‘나이가 11살이나 많은 내가', '일을 더 오래 한 내가' 사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었다면 나이 불문하고 계산을 했을 터. 일단 그 친구가 내가 기꺼이 한턱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거니와 그간 그 친구가 했던 얘기들에 비추어 보면 그 친구는 집에서 전폭적으로 물질적인 지원을 받는 친구였다. 일단 학비와 생활비 지원은 물론이고 그 지원이 (내 기준엔) 차고 넘쳐 학교 다닐 때는 일주일에 30만 원을 내는 시티 한가운데 독방을 쓰며 일도 안 하다가 졸업하고 비로소 난생처음 일을 시작한 친구였다. 중간중간 한국에서 가족들이 놀러 와 멀쩡한 핸드폰도 최신형으로 바꿔주고 평소 소비를 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나는, 분기별 학비가 늘 후크선장의 시계 소리처럼 나를 조여왔기 때문에 마트에 가면 나의 구매 리스트 중에서도 세일하는 항목들 위주로 우선순위가 정해졌으며 20달러 이상의 지출에 예상되는 모임은 한 달 전부터 돈을 모아서 참석하는 입장이었다. 나이 빼고는 그 친구보다 많은 게 하나도 없는데 굳이 사 주고 싶은 마음도 딱히 안 드는 사람의 밥값을 내가 낼 필요가 있나?


워낙 나이가 어린 친구다 보니 주위 언니 오빠들을 만나면 돈 한 푼 안 드는데 나는 그러지 않아서였을까, 본인 위주의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아서였을까, 그냥 내가 별로여서 일까 그 친구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결국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만둔 다른 사람에게까지 말하는 본인의 귀국을 나에게는 끝끝내 알리지 않고 떠났다.


다른 곳에서 같이 일하게 된 나보다 어린 한국인이 있다. 몇 살인지는 관심 없고 서른이 안된 걸로만 알고 있다. 내가 2년 반을 보내고 있는 중에 온 친구인데 아침에 출근을 하면 눈을 안 마주친다. 낯을 가리는 건가 하기에는 다른 사람들에는 인사도 먼저 하고 한국인이라서 싫은 건가 하기에는 먼저 말 걸어보면 또 말은 한다. 나도 이래저래 국적 불문하고 인간관계에서 심심치 않게 상처를 받아서 지금은 ‘오는 사람 안 막고 안 오는 사람 관심 없는 스타일’이 되어 친한 사람 아니고서는 막 다가가서 말 거는 편이 아닌데 기본적으로 눈은 마주쳐야 인사는 할 거 아닌가? 몇 번 말을 섞어 봤을 때 나를 밀어내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5분 이상 함께 의사소통을 해본 적 없는 나에게도 욕을 섞어 가면서 말을 하는 이 친구와의 대화가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모르겠다.

만나게 된 어린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렇다 보니 이제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 아니 한국인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의 감을 점점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이를 잘 묻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외국인들과 나이를 잊고 어울리다가 이따금식 등장하는 한국인에 나의 행동이 좀 부자연스러워짐을 느낀다. 뭔가 내가 어른스러운 행동을 보여야 할 거 같아서, 그렇다고 꼰대 같아 보이지는 않아야 하고, 그러다가 저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저러고 다닌다 할까 봐...


무슨 얘기를 하면 6살 어렸던 전 남친은 나더러 주사가 꼰대질이라 하고, 내가 느끼는 걸 어른들한테 말하면 그걸 이제 깨달았냐고 했다. 어쩌라는 거야… 동갑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비로소 내가 기다린 답이 나왔다.


야, 너도? 나도 ㅜ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