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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Aug 29. 2021

나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

외국 생활을 하면서 좋은  중에 하나는 원하지 않은 인간관계는 얼마든지 거리를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럼 죽마고우가  만한 사람을 만날 기회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한국만큼이나 이민자들 역시 다들 살기 바쁜 입장이라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웬만해서는 쉽게 정을  나누지 않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누군가와의 인연으로  유년기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어떤 이와의 절연으로  인생의  부분을 가슴 아프게 도려내야  필요도 없으니  외국 생활 8 동안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도 미련도 사라지게 되었다.


내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나의 외로움을 다른 사람에게서 위안받으려 극성맞게 누군가를 찾아 헤매며 너도 나도 곁에 두려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인연이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찾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연락을 잘 안 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연락을 안 한다.

‘밥 한번 먹자.’에 소극적이거나, 구체적인 만남 제안에 거절 후 다시 만나려는 의도를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안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만나서 본인 얘기만 실컷 하고 ‘우리 잘 통한다.’ 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이상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무슨 얘기만 하면 “나도 그래.” 라면서 본인의 힘든 얘기로 연결 지어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가로챈 내 발언권에 내 이야기의 주제는 이미 개나 줬고 자신의 어제와 딱히 다를 바 없는 불평불만에 날개를 달아 노고를 토로해댔다. 지금 내 시끄러운 속 달래기도 바쁜 나에게...

 ‘그래… 안 힘든 사람이 어디있겠어… 얼마나 말하고 싶었으면 저럴까…’  하고 내 얘기를 체념한 채 한바탕 쏟아내는 얘기를 듣다 한 마디씩 거들면 또 괜찮단다.


나: “ 어딜 가나 안 맞는 사람들 꼭 있지. 그래도 매일 보려면 힘들겠네. “

그: “ 뭐 꼭 그렇게 힘든 건 아니야. “

: “그래.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오버타임 하면서 일하면 힘들겠다. “

그: “근데 또 하다 보면 괜찮아.”


아니 그럴 거면 징징 거리 지를 말던가, 안 괜찮은 내 이야기를 가로채지를 말던가…


그래 놓고 양심상 한 번씩 나의 안부를 묻는다.

그 토끼 꼬리만 한 그의 집중력에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조심스럽게 나는 괜찮지 않다는 얘기를 최대한 집약하며 온몸으로 표현하는데도 본인의 얘기를 다 털어놓고 목표 달성을 한 그 친구의 응대는 참 한결같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네.”



얼마 전에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한국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하는 동안 꽤 사이좋게 지냈었는데 따로 만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몇 번 제안했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길래  그 뒤로는 여지없이 나는 먼저 연락을 한다거나 뭔가를 제안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그만두는 날짜가 다가오고 웬만한 동료들이 다 참석한 송별회에 그 친구는 자기와는 나중에 따로 밥 먹자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먼저 떠나기 전에 밥을 먹자고 하면서도 끝끝내 시간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  직장을 떠나면서 이렇게 나를 더 이상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관계들 역시 여지없이 내 폰에서, 내 기억에서 떠나보냈다.

그러더니 7개월 만에 연락이 와서는 내가 봤었던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공부한 자료들과 설명을 듣기 위해  두 시간을 운전해서 오겠다는 열의마저 보였다. 그러고 며칠 뒤, 예기치 않게 락다운이 되었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이 친구는 다시 전화해 내 자료만 이메일로 전달받기를 원했다.  


내가 뭐 대단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시험에 대한 아무런 조사도 없이 다짜고짜 (서론은 길었지만 결국 목적은 시험자료) 자료를 요청하는 이런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것에 감사하며 있는 것 없는 것 다 퍼주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도 시험을 핑계로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겠다는 사람과 원하는 것을 얻으면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 사람을 구분할 정도는 되었다.  


오랜만의 통화에서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이 친구가 말했다.

“ 내가 안 하면 연락 진짜 안 하네?”


내가 너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건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너와의 대화가 즐겁지 않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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