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Sep 03. 2021

남 좋은 일만 시킨 내 연애사업


나는 진짜 복 받을거야.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뭐라도 하라길래 있는 구실, 없는 구실을 끌어모아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한 시도를 열심히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 주위에 싱글이었던 친구들만 행복한 봄날을 맞이하고 나는 여전히 기약 없는 겨울에 남아 있는 것 같아 더 많은 친구들을 잃지(?) 않기 위해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20대 때까지 나는 꽤 공사가 다망한 친구였다.


호주에서 알게 된 오빠와 본인 친구들과 내 친구들이랑 래프팅을 가장한 1박 2일 미팅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얼마만의 엠티냐는 마음에 설레며 친구들을 모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할 때 만났던 언니 동생, 투잡 할 때 만났던 친구, 운동 다니다가 알게 된 친구, 워홀 할 때 만난 친구 등등 내 친구 일곱 명과 오빠 친구들 여덟 명으로 꽤 규모 있는 엠티가 성사되었다.

싱글 남녀 열다섯 명의 목적은 모두 같았다. 래프팅을 가장한 ‘내 짝 찾기’이었다. 래프팅이라는 액티비티가 있으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맘 편히 재미있게 여름휴가나 보내자는 밑밥도 있었다.  


열다섯 명 중에 한 커플이 결혼하게 되었다. 그 언니는 그날 도착하자마자 마음에 드는 사람 없다고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여자들 숙소가 있는 이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던 언니였다. 래프팅을 하다가 손가락 부근 살이 찢어져 피가 났는데 그 이후로는 노골적으로 나한테 괜히 왔다는 둥, 미안해하라는 둥하며 징징 거리던 언니였다. 그 손가락 긁힐 때 원인제공을 했던 오빠랑 손가락을 빌미로 연락하면서 이어진 모양이다. 손가락에 붕대 감은 사진은 연락하지 않아도 알아서 보내면서 둘이 연애 하게 된 것도 먼저 말하지 않더니 결혼식 한 달 전에 누군가 물어봐서 그제야 결혼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렇게 한 명을 보내버리고, 나는 회사 교육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다른 오빠와 친하게 지내다가 또 다른 엠티를 계획하게 된다. 이번에는 3:3으로 소박하게 진행했다. 조금 더 심도 있게 진지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사실은 그때부터 점점 싱글 친구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여행 가기 전에 미리 서로 만나서 친해지는 시간도 가지고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몰라.


이번에는 저 래프팅도 같이 갔던 친구와 내가 연락하던 오빠가 사귀게 되었다. 내가 그 당시 제일 자주 만나던 친구였는데 그렇게 떠나가 버렸다. 그 커플은 잘 어울렸는데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도전해보기로 했다. 성당이었다.(성당 오빠들이 또 자상한 매력이 있거든.) 많이 내려놓긴 했다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종교가 같은 사람과 같이 미사 가고 함께 기도하는 로망이 늘 있지. 어렸을 때는 성당에서 활발하게 친목 활동을 했었는데 외국을 나다니고 집까지 이사를 하는 바람에 동네 성당을 다니지 않고 명동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참석하는 정도로 신앙생활을 연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왠지 동네 성당에 가보고 싶어서 주일미사를 참석했는데 하필 그날, 미사 후에 청년 캠프 갈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갔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까 봐 마음이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마침 모집 활동을 하던 청년부 분이 말을 걸길래 혹시 다른 성당 사람 데리고 가도 되냐고 했더니 너무 괜찮단다. 그래서 완전 다른 동네에서 성당을 다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그 친구는 나 때문에 가게 된 우리 본당 캠프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다.


참나…


나를 위한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끼리의 정분이라 정장 한 벌은 고사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들을 명분도 없는 남만 좋은 일들이었다.


그랬다. 이쯤 되니까 점점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하기로 했다. 혹자들은 이렇게 내려놓으면 또 그때 운명처럼 누군가를 만나기도 한다는데 나는 손을 털어내니 정말 믿을 수 없이 모든 게 멈췄다.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어. 몇 되지도 않았던 남사친들도 씨가 말랐고 이렇게 외국까지 나오니 또래 한국 남자들과 얘기를 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또래 남자가 뭐야 남녀 불문 한국 사람들과 두 명 이상 같이 어울렸던 적도 까마득한데…


자존감을 가져라.

마음을 비워라.


등등 연애를 하기 위한 말들이 많은데 다들 자신들을 너무 사랑하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요??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구원의 빛처럼 만나 알콩 달콩 잘 사는 사람도 많던데 왜 나한테만 미리 만나기도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래. 왜 나만 그러래…

마음 비우면 나까지 소리 소문없이 비워져 버릴 거면서…


처한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사실 의도하지 않게 마음을 많이 내려놓아 지기는 했다.

지금 여기 같이 일하는 남자 직원들 평균 연령이 나보다 열 살 이상 많거나 열 살 어린 기이한 이곳에서 외로움에 누군가 만나 (그렇게 라도 만날 만한 적당한 사람도 없지만) 영양가 없는 감정 소모하느니 여기 어쩔수 없이 있어야 하는 기간에는 이렇게 글이나 쓰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끽하자면서…


그래도 문득문득 앞으로 남은 날들 중에 가장 젊은 오늘이, 내 젊음이 아깝다.

어디 나같이 본의 아니게 남 좋은 일 시켜주는 사람은 내 주위에는 없나…?



예전에 알던 동생이 동네 술집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했다.


“ 어… 나도 거기 갔었는데 나는 술만 마시고 왔는데 너는 거기서 인연을 만나네… ”

라고 하자 그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나는 거기서  5  마셨어.”


나는 정말 아직도 멀었나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