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안에 있는 널 지나가다 우연히 봤는데 짜증이 확 나네
요즘 가스 라이팅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다양한 예로 접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어. 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다툼이 있을 때, 불필요하게 있는 힘껏 상처를 주려고 말을 내뱉길래 말을 꼭 그렇게 심하게 해야겠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본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서… 나를 만나고 이렇게 변한 거라고 했다.
여기서도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카피가 통용되는 건가…?
나는 혼자 두면 알아서 반성을 하는 사람이다. 초6 때, 1학기 반장을 하고 2학기 반장 선거 후에 2학기 내내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초등 학생판 레임덕이었네…) 같이 어울리던 6~7명 정도 되는 애들 중에 한 명이 2학기 부반장이 되면서 선동해서 나를 따돌리게 된 것.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 친했던 친구들의 그 매몰참과 영악함에 13살 인생 최대의 공포였고 충격이었는데,
“ 한두 명이 아닌 같이 놀던 애들이 너를 따돌리면 너한테도 문제가 있는 거야.”
라고 그러셨다.
그 이후로도 나는 '남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라'라고 들으면서 자라왔다.
그런데 칭찬도 격려도, 응원도 없이 내 과실을 먼저 챙기다 보면 사는 것 자체가 미안해지는 상황에 다다르게 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잘 모른다. 자책하는 법만 알 뿐.
네가 나한테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네가 잘해주면 잘해주는 대로, 내가 못해주면 못해주는 대로 미안해하고 반성할 사람인데 그걸 못 참고 그렇게 세뇌를 시켰다.
왜 만났냐? 그렇게 이상하게 변해가는데?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다 같이 아는 친구들과 만나고 온 어느 날, 유독 친구 와이프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솔선수범해서 칭찬을 늘어놓길래 왜 내 칭찬은 안 하면서 다른 사람 칭찬을 그렇게 하냐고 물었다.
너는 다른 곳에서 많이 듣잖아. 익숙해져서 안돼.
누가 안 그렇겠냐마는 나는 유독 칭찬에만 춤추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라왔다. 나중에 커서 어머니께 들은 얘기인데 외모 칭찬은 외모에 너무 치중해서 정신 팔릴까 봐, 성적이나 그 외 학업에 관한 칭찬은 그 자리에서 안주할까 봐 많이 아끼셨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언니가 먼저 해 놓은 것들이 있어서 그 정도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 이상 하지 않으면 별 감흥이 없으셨던 거 같다.
핑계 없는 무덤 얘기 같은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서른이 넘고 마흔이 다 돼가도 내가 하는 일들,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뭘 해도 다 부족한 것 같아 여전히 칭찬에 목이 마르다. 내가 뭘 잘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일찍이 포기됐고 이제는 그래도 나 정도도 괜찮은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 같다.
이 정도만 이면 감사할 나에게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다른 누구의 어떤 말보다 나에게 가장 큰 의미가 되어 줄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 오히려 칭찬은 고사하고 연애를 많이 안 해본 티가 난다느니, 감각이 떨어졌다느니, 술 마시면 꼰대가 된다느니, 본인 어머니와 닮은 말투가 암 유발을 시킨다느니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던 사람이었다.
나니까 이런 얘기해 주는 거야
라면서...
그러니까 왜 만났냐고 그렇게 기 사는 게 꼴 뵈기가 싫은데…
좋을 때는 좋았지. 나름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좋은 점을 드러나게 하는 관계가 아니었다고 헤어짐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말했었다.
헤어짐에는 다른 이유들도 많지만 그 모든 이유들이 말하는 단 하나, 우리는 그냥 맞지 않는 거였다.
학교 선생님들이나 회사 사람들과의 인맥관리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를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하고,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점에 미투 하는 사람들이 왜 이제 와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너,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대해 우리의 소비로는 티도 안 난다며 나랏일에는 관심이 없는 너와 대단하게는 못해도 미약하나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으려 하고 내가 동참할 수 있는 일들이 소박한 것에 또 반성하고 있는 나는 애초에 갈 길이 다른 사람이었다.
헤어질 때 그래도 좋게 끝내고 싶은 마음에 "본의 아니게 상처 준 부분이 있다면 미안하다" 고 하는 나에게 "당연히 미안해해야 한다" 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너를…
나는 왜 만났냐…?
그래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