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호주는 코로나 관리를 잘하는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 여기는 호주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일상생활이나 다름이 없다. 현지에서 이 혼란한 시기를 처음부터 경험한 바로는,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을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나 체계적인 의료시스템의 역할보다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국경봉쇄는 물론, 한두 명의 확진자만 발생해도 바로 3일 이상의 lock down을 때려버림)
나는 브리즈번 시티에 있는 5성급 호텔에서 일하고 있었다. 2020년 3월 경, 여기저기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더니 HR과 부서 매니저들을 통해서 기약 없는 휴직 통보를 받았다. 그때가 호주 정부에서 2주 동안 essential service 근무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자가 격리를 시행한 시점이었다. 모든 음식점과 그 외 영업점들은 문을 닫아야 했고 호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호텔은 직원들에게 사물함을 비우라고 종용했고 그리고 보관 중이던 모든 식자재와 주류 등을 직원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나눠주고 주방 냉장고와 창고를 비워내고는 모두 걸어 잠갔다.
그리고 정확히 이주 후, 매니저의 전화를 받았다.
정부가 호텔을 호주인 해외 입국자들의 격리 시설로 활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일하던 호텔이 선정되었는데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의 안전성을 설명해 주면서 일할 의지를 물어보는 연락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얘기 안 해줘도 돼요. 입에 거미줄 생길 거 같아요 무조건 땡큐 갑니다.'
당장 다음 날부터 나가보니 정부 지원금을 풍족히 받는 호주인들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들 거절을 한 모양이고 나같이 외국인 신분이거나 캐주얼 워커 신분으로 1년이 되지 않아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만 다 나와 일하고 있었다. (풀타임, 파트타임(기간 상관없음), 캐주얼로 (1년 이상) 고용되어 있었던 호주인들은 2 주마다 1500불의 코로나 지원금을 자그마치 올 3월까지 받을 수 있었다. 중간에 각자의 근무 형태와 소비패턴에 따라 금액 조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격리자들 밥 주기 일상.
일은 간단했다. 매 끼니마다 셰프들이 해놓은 밥을 포장해서 문 앞에 배달해주고 노크하고 오면 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식사도 끝나면 각 층을 돌면서 방에서 나온 쓰레기를 수거했다.
모든 음식은 포장음식으로 제공되고, 격리자들은 우리가 벨을 누르거나 노크할 때까지 문밖에 나올 수 없으며 모든 소통은 리셉션을 통해서만 가능하였다. 행여 문을 열고 우리와 소통을 하려는 자가 있을 때는 격리 호텔마다 상주하고 경찰과 군인들이 해결해 주셨다.
최상의 서비스를 해야 하던 평소 근무 환경을 생각하면 절대 있을 수 없는 게스트의 “ excuse me”에 생까기 시전 가능. (격리자들은 벨소리 후 10초 뒤에 문을 여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먼발치서 “리셉션에 통해서 연락하세요.” 하기도 했다. )
음식은 이 주 동안 매일 다른 메뉴로 제공되고 각자 special dietary 있는 사람들은 요청에 따라 준비되기도 하였다. 격리자들이 Fresh air를 쐬고 싶다고 요청하면 경찰이나 군인의 동행 하에 호텔 내에 야외 수영장에서 흡연이나 간단한 운동 정도를 허용했는데 나중에 멜버른에서 그로 인한 전염이 발생하면서 그것도 금지되었다.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답답함에 이따금씩 내가 분풀이에 이용되기도 했는데 간혹 룰을 깨고 문을 열고 뭔가를 말하려는 사람있는데 한번은 먼발치서 방에 계셔야 한다고 하니 내가 아시안 인 걸 눈치채고는,
“I am not the virus YOU ARE!!” 하고 소리 지르는 아저씨도 있었다.
"뉘예 뉘예…."
어디 외국 전지훈련 갔던 십 대 남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와 두 층을 차지하던 적도 있었는데 요놈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는 방문을 다 열어 놓고 “ We are all staying in the room.” 하며 낄낄거리고 있길래 모든 서비스를 중단하고 경찰 아저씨를 모시고 다시 갔다가 영화 속에서 보던 복식 호흡 발성으로 무섭게 윽박지르는 경찰 아저씨 모습에 나도 아무 방에나 들어가 숨을 뻔.
많을 때는 700여 명 정도, 적게는 2~300여 명 정도의 삼시 세 끼를 서비스했는데 이 모든 음식을 다 포장음식으로 제공하니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지구야 미안해.
그래서 종종 환경을 생각하는 격리자들은 자신들이 묵을 동안 음식을 제외한 플라스틱 제품은 (cutlery포함) 넣어주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을 묵는 동안 재활용품들을 모두 분리해뒀다가 격리 해제되는 날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고객을 응대할 필요도 없지, 유니폼도 갖춰 입을 필요 없지, 내 지인의 대부분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었던 나에게는 거의 친목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자본주의 웃음을 한동안 지을 필요 없어서 지금 이직한 covid-free인 지역 다른 호텔에서 마스크 없이 일반 고객들과 눈 마주치며 '서비스'를 하는 게 처음에 적응 시간이 필요했을 정도.
두 개의 complex호텔을 격리 시설로 서비스하면서 확진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당연한 상황임에도 나는 건강하게 연명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이 혼돈의 시간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