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Jun 08. 2021

인생의 바닥에서 더 최악을 만나다.

자아실현, 결혼, 내 집 마련.. 하루에 한 가지씩을 포기하며 살아온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 신청이 가능한 마지막 나이에 도망치듯이 떠나온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떠나온 나를 뉴질랜드라고 반겨줄 리 없었다.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 한 달은 지리멸렬했던 한국을 마음속에서 내보내는 시간이었다.  장성한 딸이 집안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꼴을 보기 싫어하셨던 어머니 영향으로 쉬는 날에도 어디든 일단 나가야 했고, TV 보고 낮잠 자는 것도 눈치 보이던 생활에서 벗어나 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유령처럼 지내기를 한 달. 꿈속에서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닌 뉴질랜드로 그려질 무렵, 잃은 식욕을 챙길 생각도 하지 않아 살은 5kg가 빠지고 목적과 의욕 없이 지내고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나를 보는 근심 가득한 시선과 빈익빈 부익부 비교에서 벗어났을 뿐, 사실상 숙박료에서 자유로웠던 한국과는 달리 두 달 정도 일없이 놀 수 있는 정도의 내 전 재산은 재충전은커녕 발등에 불씨가 되어 타오를 준비를 해 오고 있었고 이제 일을 구하지 않으면 당장 길거리로 나앉을 걱정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는 감정을 세상 처음 느껴보고 산책을 다니다 뭔가 규칙적으로 해야 할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내러 가는 길에 2km 남짓한 산책로를 매일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나의 과오들이 생각나서 사연 있는 사람처럼 엉엉 울기도 하고, 억울함에 소리도 질러보고 하루하루 다채로운, 그러나 긍정과는 거리가 먼 감정들과 맞서며 계속 걸었다.

나이 29살에 모아놓은 돈도, 내세울 학력도, 제대로 된 경력도 없는 나. 당장 먹고 살 직장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 스스로가 그 무엇보다 제일 암담하고 한심한 존재였다. 가정환경 탓을 하기에는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엄마가 걸리고, 학창 시절을 탓하기에는 친한 친구들 모두 자기 앞가림들을 잘하고 있어 이건 그냥 오롯이 내 문제 일 수밖에 없어 더 괴로웠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여자 나이 서른을 앞두고 제대로 된 발달과업을 따라와도 생각이 많아질 시기에 일궈놓은 것은커녕 당장 다음 주 방값 낼 돈도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게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내 인생의 바닥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노래가 나오던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었다. 밀어서 잠금해제가 갑자기 되지 않았다. 평생 해보지도 않던 음성 명령도 해보고, 잠시 휴식을 주기도, 바늘을 부러뜨려가며 심카드도 빼보고 껐다 켜려고 하고 전원 버튼도 눌러봤지만 도무지 끌 수가 없으니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아니 너 정말 지금? 여기서!? 너마저 정녕?!

도대체. 왜. 지금. 이 순간에..


'당장 다음 주 방값도 없는데 핸드폰 살 돈이 어딨어…'

'지금까지 이력서 낸 곳에서 연락이라도 오면 어떻게 해…'

'일자리 구인 정보는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이며 연락처는 어떻게 적어야 할지…'

등등 눈물도 초점도 생각도 잃은 와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은 결코 최악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육만 번도 넘게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찾을 길이 없어 헤매고 있었을 지라도 이 작고 하얀 것이 내 지문에 밀려 다양한 화면으로 날 이끌어 주던 그때는 나는 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 나는 다른 거 말고 일단 스마트폰에 문제가 없었던 그 직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  다 필요 없고 그냥 일단 스마트폰만 다시 쓸 수 있으면 될 뿐이었다.

그간 울부짖으며 했던 근심 걱정이 싹 사라졌다. 스마트 폰만 되면 당장이라도 일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일을 겪고 난 후에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워낙 가진 게 없으니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일단 뉴질랜드에 와 있다는 점?

외국인들이 생각하는 아시안의 기준보다 키가 크고 골격이 있어 신기하게 본다는 점?

놀러 가면 밥 주는 친구도 있어서 감사하고,

세일해서 $2.99 하던 피자가 말도 없이 $2.15로 내려 세 판이나 살 수 있어서 감사하고,

꽃가루 알러지때문에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은데 한국에서 가져온 약이 하나라도 남아있어서 감사하고,

날씨 좋은 것도 감사하고,

돈 빌려준다는 친구 있어서 감사하고,

일자 눈썹인 것도 감사하고,

빚 없는 것도 감사하고,

친구 이사 도와주러 갔다가 남아도는 샴푸랑 치약도 얻어와서 감사하고,

성당에서 한국 분이 말 걸어줘서 감사하고,

정 아니면 돌아오라고 말해주는 일터가 있어서 감사하고,

언젠가 이마가 넓은 친구가 나에게 잔머리가 있어서 부럽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잔머리가 당최 뭐가 좋은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부러워할 만한 게 있어서 감사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지가 멀쩡하다는 거…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은근히 가지고 있는 게 많다는 걸…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바닥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가진 것을 찾아보고 집중하는 건 어떨지...

아니 다 짜증 날 땐 별 생각 말고 그냥 사는 거지 뭐..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그냥 개와 고양이 살듯이 그냥 사는 거지 뭐...


결국 그날 폰은 기적적으로 다시 내 손길을 알아봤고 나는 드라마처럼 극적으로 그 주에 일자리를 구했다. (그 일자리가 지금까지 경력을 쌓고 공부 욕심까지 내게 해 준 첫 호텔이었다.) 당시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방값을 주급 받는 날 몰아서 낼 수 있게 인심 좋게 한주 미뤄 주셨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또 하나, 인복.



매거진의 이전글 부러워하지 마, 공기 좋은 감옥일 뿐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