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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l 28. 2021

부러워하지 마, 공기 좋은 감옥일 뿐이야.

여기는 호주,  그냥 호주… 그리고 응급실

 여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외로이 늙어가고 있는 어렸던 양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얼마 전에 외가 식구들이 모두 있는 단톡방에서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책 선물을 주고받기 위해 활기차게 오가는 대화에 불쑥 건넨 나의 외로움이었다.  

설레는 선물 교환 대화 중 뜬금없이 던져진 나의 신세 한탄에 반응을 보인 건 사촌동생 한 명과 개인적으로 톡을 남겨주신 이모 한 분.

그래. 뭐 이 시국이 나만 지치게 하는 거겠어…




"한국을 떠났을 때는 그만한 각오는 하고 있었어야 한 거 아니냐?"며

"그렇게 힘들면 한국 들어와야지 어떡하겠어." 라고


언젠가 공감 능력을 장착하다만 한 동창이 가족들이 다녀간 뒤 힘들어하는 내 페북 사진에 댓글을 달았었다.


삭제.  그만 안녕.


내 발로 걸어 나온 한국이지만, 뉴질랜드가 좋아서  호주가 좋아서 나온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사람 구실 못하고 가족들 눈치나 보며 빌빌 거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기회를 준 곳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살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무슨 일이 펼쳐 질지도 모르는 이곳을 지푸라기 삼아 ‘안되면 불법체류자 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서의 겪었던 열등감을 만회하려 하였다.

이런 나의 오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크고 작은 위기 때마다 살 구멍이 생겨 지금까지 연명을 해 온 게 8년이 되었다.



이틀 전부터 오른쪽 갈비뼈 아랫쪽 복통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운동을 잘못했나, 잠을 잘못된 자세로 잤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다음날 더 심해졌고 그 다음날 일하러 가서 한두 시간 서있으니 구토 증세까지 나타나 조퇴를 하고 근처 병원으로 갔다. 동네 병원 GP(General practitioner)는 맹장염으로 의심된다며 응급실로 가라고 레터를 써 줬다.


'난생처음 가는 종합병원을 응급실부터 가네...'


내가 대략 3시간을 보낸 2번방. 안에는 더 많은 룸들이 배치되어 있다.


호주는 응급실도 평화로웠다. '그레이즈 아나토미'나 '극한직업'에서 본 바로는 왼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오른발이 닿는 것처럼 날아다니 듯 뛰어다니는 것이 응급실 보행방법인 줄 알았는데 접수하고 두 시간쯤 올림픽을 보며 앉아 기다리는데… 문득 여기가 응급실이야 산후 조리원이야...?  

(아니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릴 거면 응급실을 뭐하러 왔겠냐며 삿대질하며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도 꿈틀거렸지만 내 옆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그냥 나는 입 닫고 집에 없는 티비나 실컷 보지 뭐. )

맹장염일 경우 바로 수술 들어갈 거라 입원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라는 GP의 조언을 듣고 온 나에게는 이 평화로움도 내 시끄러운 속을 다독이지는 못했다. 보험처리가 안 될 상황을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간호사 언니가 쥐어준 병원 차림표를 보며 나를 응급실로 보낸 이 복통이 설움으로 인한 원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건 뭐 fine-dining  미슐랭이야 뭐야.


보험도 안돼, 내 손잡아 줄 가족도 없어, 1박에 2천불이 넘는 돈을 내며 병원에서 주는 수프에 빵 쪼가리 같은 걸 먹으면서 수술 후 가장 먼저 맞이 하게 될 사람이 나를 그저 일로만 대할 영어로만 말하는 낯선 사람들일 거란 생각에 안 그래도 우울한 나날이었는데 이렇게 까지 살아야 하나 생각까지 들었다.


외국 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워서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유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아오긴 했었지만 외국에서 혈혈단신으로 맞서야 하는 외로움은 또 다른 느낌이다. 게다가 가족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 상황도 아니라면 더더욱.  

내가 없는 상황이 아주 자연스러운 가족들의 대화와 사진들이 때때로 나에게는 상처가 된다. 나의 부재가 그들의 행복을 가로막을 이유는 하나도 없지만 내가 없어도 너무 행복한 가족들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안 그러고 싶은데 그래… 어쩔 수 없어…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더욱 확실히 깨우쳐진 지금의 나의 입지- 호주에서는 본국에 제발 돌아가서 혜택 받으라고 밀어내고, 한국에서는 외국에 나가 있는 국민 아닌 국민이라 뒷전이고(이해가 모두 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엇 하나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재의 나의 위치에서 응급실까지 다녀오니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그게 바로 나였다. 나의 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나의 삶도 무의미해져 가는 것 같아지는 하루였다.  


소변 검사 4번. 혈관을 못 찾는 간호사 덕에 양팔에 바늘을 쑤셔대며 피검사 두 번, 초음파 검사에 내시경 비슷한 검사까지 생난리를 치며 응급실에서만 5시간을 보내고 내린 의사의 진단은 맹장이 아닌 물혹.  



손은 잡아주지 못해도 기도로 힘을 보태주는 가족들 덕분에, 휴무 날, 열 일 제쳐두고 장장 7시간을 나 때문에 병원에서 시간을 보낸 준코 아주머니 덕분에 또 이렇게 살아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는 또 락다운(lock down)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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