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Sep 29. 2023

밤일하는 호텔리어

호텔에서 일하면 뭐가 좋아요?


라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10여 년의 동안 호텔리어로 살아오며 대학도 나오고 스폰서도 받고 영주권도 받고  경력까지 쌓아온 자의 입장에서 본인의 적성에 맞는 부서 선택이 유연하다는 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Hostpitality 업종에 질려버려 산으로 들어가 버릴 계획이 아니고선 본인의 능력이나 자격요건 그리고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부서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아는 Front office, Reservation, Food& beverage, Kitchen, House keeping 팀을 제외하고도, Back of house라고 말하는 marketing, finance, HR 도 있고, 기술직이나 법률자문 팀들도 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사람 사는 데 필요한 웬만한 직업들의 집약체라는 생각도 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호텔 내 부서이동은 철저히 내 적성보다는 비자와 영주권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애석하지만 그렇게라도 호텔에 입문했다는 것에, 그리고 영주권을 받았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며 호텔리어의 삶은 계속된다.


‘호텔리어 도장 깨기’가 되어버린 나의 부서이동의 연장선으로 휴가를 마치고 시작된 나의 새로운 임무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하는 Night Audit이다.  모두가 잠든 호텔이어도 호텔은 돌아가고 있다는 거니까…

손님이 없으니 꽤 널널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할 텐데 기본적인 리셉션 업무 외에 호텔의 그날의 성과를 문서화해야 하는 작업이 주요 업무 중의 하나라 가만히 앉아서 영화나 보고 유튜브나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 너무 서운해.



계열사 호텔의 night auditor 구인광고


일반적인 루틴을 거스르면서 일을 하는 것이지만 고객응대가 주요 업무인 낮근무에 비해 호텔의 전반적인 일을 배우기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호텔의 전반적인 업무도 업무지만 무엇보다 나를 새롭게 아는 계기가 되었다.


먼저 나는 야행성 인간이 아니었다.


“ 이미 많이 해봐서 힘들지는 않겠네.”


휴가 때 새벽까지 돌아다니는데 동조한 친구가  ‘23:00~7:00’ 나의 새 업무시간을 듣자마자 한 말이다.


나는 인간이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를 아침마다 불행하게 만드는 눈물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 아침 기상이 설명되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이것저것 하다 보면 새벽 한두 시를 넘기는 것은 기본이고 밤에 깨어 있는 것은 아침기상에 비하면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그런데 밤에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얘기이긴 했다. 솔직히 깨어있는 것이 어렵다기보다 매일 밤에 이루지 못한 수면 시간을 채우는 데에 밖이 환하고 사람들이 왕성히 움직이는 소음이 들리는 낮시간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밤의 수면은 6~8시간 많게는 10시간까지도 이어서 잘 수 있었던 반면 아침 퇴근 후 돌아와서 청하는 잠은 2~3시간이 지나면 깨었다가 나중 근무할 때를 생각해서 다시 억지로 잠을 청하게 되는 것의 반복이었다.

지각에 대한 염려는 줄어들었지만 잠을 자야 한다는 압박감에 밥을 먹고 바로 자게 된다거나, 잠이 깨어버렸지만 딱히 뭔가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걸 알리 없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우는 업무를 하면 금방 적응될 거라 생각했었다.


왜? 나는 야행성이니까.


근데 이상하게 쉬는 날만 되면 저녁 8시만 돼도 그렇게 잠이 쏟아지더라…?

쉬는 날에 일할 때처럼 밤을 새어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밤을 새기는커녕 12시를 넘기기도 힘들어.


그래서 생각했다.

아... 인간은 태초에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것으로 설계되었구나…



나는 카페인에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커피는 오전 11시 전까지.


나는 커피나 심지어 녹차까지도  낮 12시 이후에 먹으면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곤 했었다.

그래서 커피 자체를 잘 마시지 못하기도 했는데 밤근무를 하면서 롱블랙의 맛을 알아버렸다고 할까?

깨어 있기는 해야 하고 밤과 새벽 사이는 온도차이도 있으니 에너지 드링크보다는 커피로 선택,

빈속에 우유를 마시면 자꾸 화장실을 가게 되고 속이 편하지 않아서 블랙커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이러고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함은 있었지만…


뭐래…

커피를 한잔을 마셔도 밤새 마셔도 아침 7시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뭐라도 할라치면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들어버렸다. 2~3시간 뒤에 깰지라도 잠든 시간 동안은 개꿀잠.

사실  이 경험은 아침 4~5시 출근을 했을 때도 느꼈었다.

카페인이 뭐야 … 뜬눈으로 밤을 새우거나, 꼭두새벽에 일어나면 그 어떤 것으로도 수면욕을 막을 수가 없더라고.



솔직히…

낮에 뭐 대단한 활동을 하는 나도, 여기저기 만날 사람이 많은 나도 아니어서 서비스직 근무자지만 그간 사람들에게 좀 지친, 그래도 호텔은 좋은 나에게 야간수당까지 챙겨주는 night audit는 꽤 장점이 많았다.


근데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은 우울감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혼자인 시간이 많은데 일반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거스르며 움직이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고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어서 그런가…


시티로 나가지 않는 이상 낮에도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동네에서 그마저도 모두 잠들어버리는 시간에 움직이다 보니 그전에 사람들에게 지쳤던 마음을 넘어서 슬슬 사람이 무서워지고 ‘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 잡아가고 있다.


낮에도 딱히 사람은 없는 동네


남들 다 잘 때 나와 밤 운전을 하며 출근하는 길에 문득 들었던 생각…


"이렇게 오페라의 유령처럼 지낼 거면 이곳이 호주든, 아프리카든, 한국이든  다 무슨 소용이야. "





아... 휴가 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텔리어들의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