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파티에 목마른가 봐.
해외 생활 N년차,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는 크리스마스.
지금 근무지인 호텔에서 직원 크리스마스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
한국에서 지낼 때 ‘연말'이라는 명분을 빼면 일반 회식과 진배없는 식사자리로만 기억되는 송년회만 있을 뿐 대대적인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외국 직장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해 한번쯤 공유해 보고 싶었다.
외국에서의 직장 경험이 호텔에만 국한되어 있기는 해도 다른 직장들의 송년회를 직관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니 연말은 피곤하지만 볼거리가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언급한 바와 같이 호텔은 장소부터 식사,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남들 송년회의 구석구석에 개입되어야 하는 입장이라 호텔리어들은 남들보다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진다.
이번 우리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12월 8일 수요일이다. 본격적으로 바쁘지는 않은, 그 주 객실 occupancy rate 이 가장 낮은 요일이 당첨되었다.
사실 지금 있는 호텔은 규모도 크고 직원들 연령대도 높고 해서인지 크리스마스 파티에 그다지 정성을 들이지 않은 티가 많이 나서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아 이미 두 번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참석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그냥 '그때 가봐서...' 하는 중.
내가 기다리던 그 전의 파티들이 어땠냐면...
# 내가 처음으로 스탭 크리스마스 파티를 경험한 호텔은 근무할 당시 우리나라 겨울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광고 촬영지로 주로 나왔던(그래서 한국에서보다 한국 연예인을 더 많이,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던) 여행지로 유명한 작고 예쁜 마을에 있는 4성급 호텔. 직원들 크리스마스 파티를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했었다.
1부는 작은 마을이라는 특성을 살려 온 동네의 상점들과 협력하여 설계된 게임을 통해 크리스마스 파티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호텔 이벤트룸에 모여 팀을 나누고 각 미션을 따라가면 동네의 상점들로 연결이 되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크리스마스 파티 장소로 모이는 것이었다. 팀은 예닐곱 명씩 8~10개 정도로 구성이 되고 재빠르게 찾아내는 두세 팀들이 생기면 그들을 따라가면서 흐지부지 되는 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치 학창 시절 수련회에 온 것처럼 열과 성의를 다해 의지를 불태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해서 다 같이 모인 2부는 말해 뭐해~ '열심히 일한당신, 부어라 마셔라~'인 거지. 음식은 제공이 되고 주류는 교환 쿠폰을 5장 정도 주고 그 이상은 각자 돈을 내고 마시면 되는데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이 주기도 해서 돈 내고 사 먹은 적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주류를 취급하는 펍이나 바에 가면 고주망태가 된 사람들이 술을 더 주문하려고 할때 자제시키는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그 시간은 호텔에서 통째로 빌린 시간이어서 그런 건지, 신원이 확실한 동네 비즈니스 간의 협의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 조금 보태면) 네 발로 기어 다녀도 특별히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알아서 데리고 나갔지. (나는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면서…)
동네가 동네인 만큼 다들 가족 같은 분위기에 매주 목요일 주급 날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근처 펍에 모이는, 서른 다 돼서 술 마시는 재미를 알게 해 준 곳이었다.
# 파티다운 파티의 진수를 보여준 호텔.
내가 있던 시티로 브랜드의 최초 입성(?)이라는 자부심에서 인지 도심 한복판에 있어서 인지,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파티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첫 해의 크리스마스 파티의 테마는 'Casino royal'이었다. 호텔 ballroom에 카지노 테이블과 딜러들까지 섭외해서 카지노 분위기를 재연하고 우리는 앉아서 먹고 마시고 놀기만 했다. 드레스 코드도 'black tie' 였는데 없으면 없는 대로 알아서 꾸미고 오라고 했는데도 이 사람들 '기회는 이때다.' 하고 한 달 전부터 장바구니에 엄청 담아두고 직구하고 쇼핑하고 난리도 아니었더랬지.
나는 하루 입고 언제 또 입을지 모르는데 ‘굳이 뭘 또 사나’싶어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기회가 없어서 못 입었던 옷들을 챙겨 입고 나갔는데 다음 해 파티의 계획을 알았다면 나도 하나 사는 게 나을 뻔했었다.
예쁜 옷 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한껏 꾸민 사람들이랑 춤추고 놀면 기분이 또 조크 등요~
두 번째 크리스마스 파티의 테마는 ' Christmas on the cruise'였다. 내 인생의 첫 선상 파티.
호텔의 오픈 멤버인 데다가 원래 파티 한번 하고 나면 부서 상관없이 사람들과 친해지기도 하고 워낙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허구한 날 친목을 도모한 탓에 여기저리 다들 아는 사람들이니 잠깐만 앉아 있어도 누구든 와서 술을 건네거나 춤추러 데리고 나가서 배 위에서 있는 약 두어 시간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리고 2차를 간다. 호텔 측에서 장소를 마련해 두기도 하는데 2차부터는 사비로 지출이 되고 그때는 진짜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 사람들만 가는 거지.
보통 호텔 내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근처 계열사 호텔과 품앗이하듯이 우리 파티 때는 그쪽 직원들이, 저쪽 파티 때는 우리 직원들이 도와주기도 하고 내부에서 지원자를 받기도 한다. 지원자들에게는 남들 놀 때 일한 만큼의 보너스(당시 호텔의 경우는 개인당 $200 상품권 별도 제공)를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놀기를 더 원하지.
직원 크리스마스 파티의 시작에는 항상 General manager와 각 부서 담당자들의 연말 보고가 있다. Employee of the year 나 department of the year 같은 시상도 하는데 본격적인 파티를 앞두고 있어서 인지 분기별로 하는 업무보고인데도 그날만큼 사람들의 호응이 엄청나다. 업무 보고마저도 파티야.
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파티에는 항상 드라마가 생긴다. 나도 한 때 드라마 많이 찍었드랬었지...(하아..배우인줄...) 그래서 파티는 항상 신나. 설레어!
그러나 종종 새벽 3시 넘어서까지 놀다가 집 가서 샤워만 하고 나와 새벽 6시 출근해서 오픈 전에 급하게 쓰레기통에 모든 걸 게워내고 10시간을 풀로 근무했다는 놀고는 싶고 일은 해야하는 호텔리어의 처절한 삶도 있다.
스탭 크리스마스 파티의 다음날에 호텔에서 만나는 직원들 간의 인사는 '굿모닝'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누구 하나 ‘Good’한 몰골인 사람이 없거든.
그래서 다들 네 모습이자 내 모습인 쾡한 얼굴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한다.
Are you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