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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Nov 24. 2023

아니다 싶을 때 바로 그만둘 수 있는 용기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비록 남들이 자는 시간에 풀타임으로 일을 하기는 하지만 남들이 한창 일하는 시간에 훤한 밖을 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편치 않은 시간, 생산적인 일 하고 싶었다.


나는 카페창업 꿈나무.

지금까지 일하면서 보고 배운 것을 토대로 나만의 특색 있는 카페를 차리고 싶은 마음을 꾸준히 지인들에게 피력해 왔었다.  

그래서 큰 호텔이 아닌 동네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바리스타로서의 감을 잃지 않고 이런저런 것들을 어깨너머로 배우며 '나의 카페'를 차리기 위한 한걸음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몇 달의 구직활동 끝에 캐주얼 바리스타로 일하게 된 카페.

한국인 사장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한국인 매니저가 있는 곳이었다. 키친에는 한국인 셰프들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한국인이었지만 필리핀 사람과 호주 사람도 있다고는 했다.     

 




젊고 건강함이 무기였던 나의 워홀 시절 경험했던 농장체험은 나름 재미있었다.


한 작물의 시즌이 끝나고 구직활동 중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간 곳은 당근 공장.

일반 하우스에서 셰어 생활을 하거나 농장에서 숙소를 제공하는 다른 일터와는 달리 이번에는 캐라반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캐라반이라 해서 감성캠핑만 있다고 생각하면 노노!

여가를 위한 캐라반이 아닌 노동자들의 숙소처럼 이용되는 곳이어서 그와는 정반대로 공용화장실에, 낡고 곰팡이 냄새나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곳이었다.

숙소를 보고 일터는 가보기도 전에 하루 반의 시간 동안 생각했다.

 

‘나 여기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거 같아…’

 

당시 남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난 직후였고 같이 이동했던 한 아이와도 트러블이 있는 상황이어서 이래저래 심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마저 척박하게 보이니 심란함을 이루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야반도주.

인터뷰도 보기 전이라 결정이 쉬웠다.

    

그 뒤로 일자리하나만 믿고 무작정 떠나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고 나랑 맞지 않은 사람들과 굳이 성격을 맞추겠다고 감정소비하는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호텔 일을 계속하면서 남는 시간에 일을 하는 거라 내 경력을 쳐주면야 고맙지만 커피만 만드는 거면 법정 최저 시급만이 이도 괜찮다고 합의 하에 시작한 일에 각종 클레임과 홀 전반적인 상황을 다 통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바라는 모양이었다. 이미 호텔 레스토랑에서 팀리더의 경력까지 있는 나로서는 그런 업무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나는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하고 싶었을 뿐, 굳이 홀까지는 깊숙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본인이 카페의 기준이라고 말하는' 매니저는 나를 바리스타로는 한 시간 남짓 시켜보고는 내가 그 카페에서 솔로 바리스타로는 불안해 보이니 홀 포지션으로 약 4주간 일을 하면서 바리스타로 넘어오는 것을 권유하는 듯했다. 이 분야로는 경력직인 나를 최저시급으로 매니저급의 일을 하기를 원하면서 마치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원하는 포지션을 바로 주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좀 거슬렸다.

 

엉덩이골, 가슴골이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일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호주에서 레깅스만 피하면 된다더니 내가 입은 반바지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너무 짦다면서, 한국인 매니저는 위험한 걸로 치면 더 위험해 보이는 샤틴 재질의 롱스커트를 입고 일하고 있고 안된다는 레깅스를 다른 필리핀 직원들은 버젓이 입고 일하는 모습을 보니…

사장님도 그냥 내가 별로인 거죠?

 

여러 가지 이유야 더 들 수 있지만 뭐 어쨌든 나는 '을'이니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었고 한국인들과 처음 일해본 입장에서 딱히 그들의 단점을 마구 찾아내어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개인 규모의 사업체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고 HR을 비롯해 각종 부서의 업무 분담이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는 나름의 체계와 절차가 확실한 곳에서만 일을 해본, 하다못해 유니폼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고 수기로 출퇴근 기록을 해 본 적이 없던 나라서 아마도 그들은 운영방침에 내가 적합하지 않았다고 생각 할 뿐.

(물론 나도 일 하러 오라 그래서 갔더니 나중에 온 매니저는 일하는 거 보고 고용할지 안 할지 결정한다는 앞뒤 안 맞는 얘기를 하니 혼란스러운 데다 기대했던 일이 아닌 일을 하게 되어 황당하니 이래저래 열심히 하는 직원으로는 비치지 않았을 수도 있기에. )

 

그래서 그만뒀다.

 

 


 

호텔업계 종사자라면 흔히 알만한 세계적 호텔 체인에서 일을 하긴 하지만 같은 브랜드의 호텔이라고 해도 한국과는 규모에서의 차이도 있고 일을 하면서 직원들끼리는 회사 욕만 했는데 막상 다른 곳을 가보니 정말 이 정도는 나름 잘 정돈되어 있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너무 호주식 근무환경에 물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호텔에서는 나의 쉬는 시간은 무슨 일이 생겨도 보장해 주거든.

그 카페에 잠깐 발 담그려다 빼면서 그동안 밤에 일하면서 오는 우울감이고 뭐고, 남들 한창 움직일 때 빈둥거린다는 불안감도 한 번에 해결!

그냥 휴가 가기 전까지 ‘행복합니다’ 하면서 일하려고…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했던가...

 

비록 ‘카페 창업의 한걸음’이라는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찾은 여유로운 대낮은.

.

.

.

너무 꿀맛이다. 너무 소중해.


내 카페는 기필코 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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