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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Nov 19. 2023

호주도 이제 옛날 그 호주가 아니구나…

‘호주에 와서 참 좋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너무나 다정해 버린 것이다. 그냥 지나만 갔을 뿐인데 방긋 웃어주고 집에 바로 가기 아쉬워서 잠시 쉬어 갈 뿐인데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물건만 샀을 뿐인데 막 ‘달링’이라 그러고 ‘예쁘다’ 그러고 그랬다.


그런데 요즘 호주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왕왕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어서 좀 서운해질라 그런다.



운전자들 왜 인사에 인색해졌어?

호주는 완전한 운전면허를 따기까지 Learner, Red P, Green P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full license 소유자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길도 널찍널찍하고 쉬워서 바쁜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스킬이 아니고서도 초보운전자들에게 적응하기 어렵지 않은 편이라 생각된다.

호주에서 난생처음 운전을 시작한 겁쟁이 운전자 입장에서 호주에서 운전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필이면 차가 없으면 일을 갈 수 없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호주 사람들이 매너 있게 운전을 한다는 점이었다.

방향등만 미리 잘 키면 알아서 뒤에 차가 천천히 와주고 신호가 없는 곳에서 좌회전/우회전을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으면 내 앞을 가로지르고 있던 직진하는 차들이 빨간불에서 초록 불이 되었을 때 모른 척 가버리지 않고 나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마저도 갈팡질팡하고 있으면 손짓을 하거나 깜빡이를 켜서 먼저 보내주곤 한다.


그러던 호주가 요새  운전자들의 인사가 보기 어려워졌다.

처음 운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앞에서 다른 차가 끼어들려고 했을 때 속도를 낮춰주면 창문 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호주 사람들이 창문 밖으로 걸치고 있던 팔을 슬쩍 올리면서 대놓고 인사를 하기도 하고, 일부러 창문을 내려서 엄지 척을 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방법인 백미러로 보이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인사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간 빡빡한 끼어들기에도  뻔뻔하게 비집고 들어와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운전자들도 많고 그냥 양 옆 차선이 멈춰 있을 정도의 교통체증 와중에 끼어들어버리는 난감한 상황 아니고서는 운전자들 간의 인사를 보기 어려워졌다.

창문 틴팅이 진하지 않으니 운전자들 간의 인사를 주고받는 맛에 운전하기도 했었는데 교통체증도 예전에 비해 길어졌는데 인사하는 재미마저 줄어드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도둑이 들었다고?

친구네 집 가라지에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가라지 문을 열어 자전거니 뭐니 훔쳐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 동네 한국인들의 소통창구인 네이버 카페 갔더니 집까지 털렸다는 소식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알던 호주는 그런 동네가 아니었다고...  

물론 밤에 다니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사람들 간에 두터운 신뢰가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 보안에 취약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일단 현관문이 한국처럼 쇠문이 아니라 방문 같은 정도의 단단함과 열쇠고리 정도로도 집을 드나들 수 있게 해 놓았고 마음만 먹으면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의 높이에도 발코니가 다 오픈되어 있고 발코니와 방을 통하는 창문의 보안도 한국의 흔한 아파트 베란다보다도 약한 문고리 정도일 뿐이다.

그러니 조금만 나쁜 마음먹으면 손쉽게 저 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 집이 비는지 정도는 금방 알아낼 수 있고 큰 힘 들이지 않고 쳐들어 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도둑이 출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괜스레 불안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렇게 불안한데 같이 사는 친구는 속 편하게 말한다.


“괜찮아 우리 집은 가구가 너무 없어서 아직도 이사하고 있는 중인 줄 알 거야. “


내 일상만큼이나 심플한 우리집 거실



건조한 여름이 뭐야?

호주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사하면서 낡은 선풍기를 버리고 왔는데 지금 당장 가서 사 올까 하고 고민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한동안 내가 기억하는 호주의 여름은 타는 듯한 더위이지만 그늘에 가면 땀이 마를 정도의 서늘함을 느끼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름이었다. 내가 워홀 때는 뙤약볕 아래에서 딸기를 파내다가도 그늘만 찾으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날씨이었기에 체질적으로 더위를 너무 싫어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호주의 여름이라면 괜찮다고, 그런 여름을 너희가 아느냐고 당당하게  말할 만한 계절이었다.


그랬던 호주가 변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자마자 끈적거리는 한국의 여름처럼 점점 습해지고 있다. 이제는 그늘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백화점으로 쇼핑몰로 가야 하는 날씨가 되어 버렸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한밤의 더위에는 차로 달려가 에어컨으로 키고 시간을 보내다 온 적도 있다.  



아마 호주만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아마 점점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있을 테고

아마 그때에 비해  젊고 건강하지 않은 나이 탓도 있을 테고


아마 호주에서 이 꼴 저 꼴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나의 변화일 수도 있겠다.





호주가 변했다면서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그냥 한국이 가고 싶다고 말해.




그래서 나 한국 가기로 했지롱~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호주 사람들에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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