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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란 Jun 07. 2017

팔리는 기획

<알쓸신잡>과 베스트셀러

6월 2일 첫 방송을 성공적으로(라고 쓰고 시청률 5.4%라는 주석을 단다) 마친 나영석 PD의 새로운 프로그램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tvN).


소위 지식인으로 불리는 분들을 한 자리에 불러다 놓고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지식인들을 불러다 모았지만 책을 소재로 한 <비밀 독서단>(O tvN) 같은 컨셉은 아니다. 오히려 <1박 2일>(KBS)의 교양 버전으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아! 유희열과 하하가 진행하는 버스킹 토크 <말하는 대로>(JTBC)의 야생 버전이라고 하는 게 가장 맞겠다.


첫 방송을 보고 <알쓸신잡>이 '팔리는 기획이구나' 했다.

방송에서 언급된 책들이 각종 인터넷 서점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인데. 특히 <세계사 편력>이라는 역사서는 일주일째 교보문고, 예스 24 역사서 부문 1위, 인터파크 도서 베스트셀러다.


온라인뿐만 아니다. 해당 책의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 재고를 확인했더니. 합정을 제외하고 모두 재고 없음(0)(2017년 6월 6일 기준).

@교보문고


드라마 PPL보다 강력한 술자리?

보통, 제품을 TV 프로그램에 등장시켜 홍보하는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의 경우 기본 단위가 ''이고 '억'까지 제시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서비스하는 을 예능에 등장시켜보고자 몇 다리 건너 알아본 적이 있다. 기획에만 1개월, 비용은 수 천인데 어떠한 보장도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서(트래픽, 노출 수 등의 숫자는 제공해줄 수 없다. 따라서 앱 가입자가 방송 직후 얼마나 늘었는지를 통해 어림짐작해야 하는데. 여기에 수 천을 쓰는 것은 스타트업에게는 쉽지 않은 방법이다) 바로 접긴 했지만.


이러한 PPL은 보통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자동차부터 인테리어 제품, 카페까지 다양한 제품이 드라마 PPL을 통해 등장한다.


도서로 한정 지어보면 가장 유명한 건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의 대사로 유명해진 책 <모모>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현빈의 대사에 힘입어 100만 부가 팔렸다.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이 침대에서 읽던 동화책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도 방송 당일에 1000부가 팔렸고, '도깨비'에서 공유가 읽은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도 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술자리'에서 책을 팔아?

멋있는 배우가 등장해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 하는 것도 아니고. 비밀 독서단처럼 대놓고 책을 소개하는 것도 아닌데 책이 팔리는 현상. (PPL 일수도 있지만 아무리봐도 이번 편은 아닌 것도 같은)

@알쓸신잡

<알쓸신잡>의 주요 상황은 술자리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몇 시간을 달려가 촬영하지만 통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각자 흩어져하는 먹방과 관광이 촬영의 대부분을 차지하겠지만 그걸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평소 술자리처럼.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 각자의 경험을 하나씩 풀어낸다. 낮에 했던 관광, 먹방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그때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편집했다. (나영석 PD 프로그램의 특징은 모두 마법의 편집...)

@알쓸신잡

다 함께 우르르 관광하는 방식이 아닌 각자의 프레임에서 바라본 서피랑 마을, 박경리 작가 묘소, 충렬사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잡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술자리는 무르는데. 그때 다양한 책이 등장한다.


'보편적 재미'를 팔다 

<비밀 독서단>에서 '이 책 보세요' 하는 것도 꽤나 효과적이었지만 일단 '책'이라는 단어에 일반인은 지루해한다. 시청자도 구매자도 제한된 상황에서 방송하는 셈이다. 이에 반해 <알쓸신잡>의 기획의도는 '여행'에 가깝다.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보편적인 소재로 방송사에서 설정한 주요 타깃이 있더라도 그 범위가 꽤 넓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O tvN 홈페이지

OtvN에서 주구장창 부르짖는 '재미와 의미'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재미'에 최소 51%의 비중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영석 PD가 지금까지 해온 프로그램이 '재미', '힐링'을 키워드로 한다는 점도 프로그램 이미지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낯선 의미'를 팔다

그리고 최대 49%에 해당하는 '의미'는 게스트를 통해 만들어진다. 재미 다음 의미. 이러한 배치가 집에서 지켜보는 시청자에게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인 셈이다. (의미 다음 재미를 추구하는 대표적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썰전>(JTBC)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재미 기반으로 만들어진 술자리 토크에서 등장하는 익숙지 않은 단어와 발상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사피오 섹슈얼(상대의 센스, 지성 등에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사람), 이순신의 숨결(과학자 정제승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 친구들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우리가 느낄 수 있는지 수학적으로 계산을 시도함), 대하소설 토지(통영은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묘소와 기념관리 있는 곳)...


생소하고 낯설고 어려운 이 단어들이 '재미'와 어우러져 '의미'를 만들어 내고 몰입하게 만든다. 몰입은 궁금증을 자아냈고(통편집된 부분에 대해 편집하지 않은 영상을 보여달라는 시청자 게시판 의견도 있었다고) 책을 구매하고 싶은 욕구까지 불러일으켰다.  


재미도 의미도 사람이 만들어 낸 것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지식 소매상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계산하는 과학자
서울대 나온 예능인
미식계를 책임지고 있는 칼럼니스트
IMF가 왔다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사는 소설가

재미의 아이콘도 사람, 의미를 말하는 것도 사람. 결국 섭외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섭외가 가능하다고 해도 지식인들을 모아놓고 방송 대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챌린지다.


프로그램 끝날 때 올라가는 크레딧을 보니 작가가 최소 15명은 되는 것 같았다. 낯선 의미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최고 난이도의 기획인 것이다.  

@알쓸신잡


재미와 의미 = 팔리는 기획

<알쓸신잡>과 같이 재미를 기반으로 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끝나지 않고 '판매'까지 이어진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무한도전 위대한역사

무한도전에서 설민석 역사 강사, 힙합크루들과 함께한 <위대한 역사> 도 이와 비슷한 기획으로 볼 수 있다. 재미와 의미. '힙합'이라는 1020에게 친숙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기반으로 어려운(?) '역사'의 의미를 전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음원으로 출시해 수익까지 만들었다.


팔리는 기획을 위하여

재미와 의미를 위한 기획. 다음 순서에 따르면 조금 더 쉽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간단히 정리했다.


1. 보편적인 소재부터 찾자

여행, 음악, 쇼핑, 맛집과 같은 보편적인 키워드부터 우선 접근한다.


내 경우에는 커뮤니티 앱을 홍보하기 위한 오프라인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는데 다양한 키워드를 고려한 끝에 '전시회'를 선택했다. 앱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로 우리 브랜드만을 내세우는 팝업스토어, 스폿 이벤트를 했다가는 홍보비용이 더 들 수 있다.

@전시회 소개

전시회로 접근하면 네이버 전시회 섹션이나 SNS 채널을 통한 '이번 달 꼭 가봐야 하는 전시회' 등 공짜 홍보 채널이 많아 상대적으로 홍보비용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전시회'라고 한 단어만 쓰면 되니까. 보편적 접근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2. 콘텐츠를 입히자

이제는 콘텐츠를 만들 차례다. '힙합 - 역사', '여행 - 술자리 토크'처럼 어떤 콘텐츠로 키워드를 채울지 정하는 단계. 단연 제품과 관련된 콘텐츠를 입히는 게 관건이다.


사실 이 단계에서 '무엇을 팔 것인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경험을 팔 것인지, 제품을 팔 것인지. 위에서 말한 전시회를 만들 때 메인 콘텐츠는 전시회장 내에 블라인드 체험존이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 중

영화 <어바웃 타임>을 모티브로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체험을 통해 익명으로 소통하는 커뮤니티 앱의 본질을 알리고자 했다.


3. 디테일과 팔로업

방송이 나갔다. 전시회가 끝났다. 사실 여기까지는 팔리는 기획이라고 볼 수 없다. 제품이든 경험이든 팔리기 위해서는 방송 후, 전시회 후 홍보까지 기획되어야 한다. 보통 프로그램이 끝나고 실시간 검색어를 클릭했을 때 나오는 블로그 후기들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서비스 랜딩페이지나 제품 판매 페이지를 세팅해놓는 것. 광고를 집행하는 것까지(더 나아가 사실 데이터 분석까지ㅠㅠ). 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이나마 팔리는 기획에 가까워질 수 있다.      


끝.



쓸데없는 후기

하나. 저 술자리 대국민 참여신청 기획 한 번... 저도 좀 끼워...

두울. 사람들은 알려줘야 안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나는 <알쓸신잡>을 보면서 김영하 작가의 신작 소설 <오직 두 사람>이 단숨에 1위를 하는 게 아닌가 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김영하 작가가 소설가라는 언급만 했을 뿐 일주일 전에 신작 소설이 나왔다거나 하는 언급은 일체 없었다. 일반인들은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에 김영하 소설가가 읽은 박경리 소설가의 <김약국의 딸들>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김영하 소설가의 소설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물론 소설책은 김영하 작가라는 이름과 문학동네라는 출판사 네이밍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위권을 유지해줬지만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진 못했다. 아무래도 문학동네에서 PPL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다가 그래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 찾아봤겠지... 하며 혼자 마무리.


*참고자료

- 현민 모모 100만 부 팔려 (http://hei.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2248486k)

- 별그대 김수현이 읽은 책 판매량 급증 (http://star.mt.co.kr/stview.php?no=2014011610111491076&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 어쩌면 별들이... 4주째 1위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106_0014624023&cID=10704&pID=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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