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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Jan 21. 2024

브라질로 돌아오다

브라질 두 번째 살이 시작

극강의 편안함과 쾌적함을 제공한 비지니스 좌석의 위력은 딱 브라질 공항까지였다. 물론 이것도 예상을 뛰어 넘는 매우 긴 지속 효과였으므로 불평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난 너무 힘들었을 뿐.


첫 번째 12시간 비행에서 신기함과 설렘으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둥이는 두 번째 12시간 비행의 막바지 곤히 잠이 들었고, 최종 목적지인 상파울로에 도착한 이후에도 잠에 취에 깨질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잠에서 일어나기 싫었던 둘째는 배가 아프다고 징징대면서 걸으려 하지 않았다. 


배가 아프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겨우 비행기를 빠져 나와 출구를 찾아 기나긴 길을 걸어 나갔다. 애가 보채서인지 길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두세 걸음에 한 번씩 주저 앉아 울었고, 그나마 잘 걷던 첫째도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이고 지고 온 짐 가방은 총 4개였다. 건어물과 고추가루 정도는 컨테이너에 실어줄 줄 알았는데 캔 음식조차 실어주지 않았다. 그대로 남아 버린 식재료에 컨테이너에 미처 실지 못한 이런 저런 물건들로 짐은 예상보다 두 배로 늘어나 오빠 소원으로 지고 가는 골프채까지 합치면 100Kg에 육박했다. 


우는 아이와 울진 않지만 똑같이 지쳐 있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수화물 찾는 곳까지 겨우 왔는데 카트가 보이지 않았다. 두 아이를 "이 자리에서 꼼짝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불안한 마음을 누른 채 물어 물어 카트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 보았지만 카트는 보이지 않았다. 


중간 중간 만난 공항 직원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그때 내 눈엔 너무나 냉정하게) 모두 거절하고 지나쳐 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가방도 다 나오지 않아 분실물 신고를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주변국에서 온 듯한 한 아기 엄마가 자신이 끌고 온 4개의 카트 중 하나를 내게 주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 카트 몇 개나 필요하냐고 물어 주었다. 거지같은 브라질 공항 시스템과 불친절한 직원들에게 퍼붓고 싶은 육두문자가 입 안 한 가득이었는데 순간 전부 삼켜 버렸다. 어찌나 고마운지!


배가 아프다고 점점 더 큰 소리로 우는 아이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가방을 얼른 카트에 옮겨 싣고 나가야 하는데 30Kg이 넘는 가방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가방 찾는 사람도 모두 가버리고 직원도 한 사람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도움은 구할 수 없음을 느낀 본능은 순간 초능력을 발휘했다. "읏차!" 기합과 함께 가방을 번쩍 들어 카트에 올리고는 바로 허리를 쥐었다. 삐끗한 것 같았다. 아프지만 아플 겨를이 없었다. 우는 아이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무게 때문에 잘 밀리지도 않는 카트를 밀고 출입구를 찾아 나섰다. 


카트에 미처 싣지 못한 슈트 케이스 하나는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첫째의 고사리 손에 맡겼다. 방법이 없으니 평소 같으면 생각도 안해 봤을 방법을 쓰게 되었다. 그 작은 아이 머리로도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꼈는지 처음엔 군소리 없이 작은 손으로 케이스를 밀며 엄마를 따라 오는 걸 보니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정말 방법이 없었다. 내 머릿속은 빨리 나가서 오빠에게 아이 하나를 맡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출입구까지 길은 너무 멀었다. 짐과 아이들이 없었다고 해도 멀다고 느꼈을 거리였다. 정말이지 폭발해 버릴 지경이었다. 우는 아이가 더이상 걸으려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카트 위에 앉힌 후 아이를 거의 안다시피 한 채로 카트를 밀었다. 무거운 가방을 밀며 힘겹게 따라 오던 아이도 한계에 이르렀는지 울기 시작했다. 나도 울고 싶었다. 


출입구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제2의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찾은 브라질의 두 번째 첫 인상은 불친절한 공항 직원과 거지같은 공항 시스템, 아이들의 울음 소리, 허리 통증,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덧1. 남편은 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화가 났지만 화 낼 기운이 없었다. 긴긴 입국 심사줄에서 두 아이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려 버려서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남편의 메시지에 답할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덧2. 남편은 한 달만에 만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나 반가워서 꼭 안아 주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한 대 칠 것 같은 아내의 얼굴을 움찔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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