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아들에게 배우는 인생수업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는 아들에게 무한히 감사하며,

by Young S

막 태어나 갓난아이였을 때도 있었을 테고, 더 들어가자면 뱃속에 '너'라는 아이를 처음 잉태했던 시절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라나 이제 어린 청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지금, 내게 가장 많이 떠오르는 '너'의 모습은 늘 내 손을 놓지 않고 길을 걷던 시절의 너다. 놀이터를 가든, 학원을 가든, 항상 내 손 한쪽은 그의 손의 붙들려 있었다. 손을 놓고 놀아야 할 때면 하다 못해 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물론 아이들에 따라 그러지 않고 엄마보다 앞서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내 아이에 대한 가장 인상 깊은 어린 시절의 네 모습은 늘 내 손을 놓지 않던 네 모습이다.

그랬던 네가 어느 정도의 눈 흰자를 드러내며 나에게 상처가 되는 모진 말을 하고, 엄마 손을 언제 잡고 다녔다느냥 내 손을 거부하기 시작하는 사춘기를 시작해 그걸 어느 정도 겪고 나니 얼마 전부터 내 상상 속에 없었던 한 어린 청년이 우리 집에 살고 있다. 나보다 훌쩍 커버린 키에 단단한 어깨, 이젠 되려 힘들어 보이는 내 모습을 안아줄 줄 아는 덩치로 자라난 너에게 나는 요즘 문뜩문뜩 놀란다. 넌 뭐라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 만큼 지나치듯 한 얘기들이 내 뇌리에 와서 꽂히는 일들이 꽤 잦아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문득, 본인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엄마가 알려준 대로 정말 뭐든지 잘하고 뭐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고 믿고 살아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그런데 지나 보니 '그게 아니구나. 나는 노력형 인간이 되어야겠구나'라는 걸 알았다고. 뭐랄까. 너무 기특하면서도 고맙고 청춘인 만큼 청량한 예쁜 깨달음의 이야기였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예쁜 말을 깨달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실제로는 ' 그런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데? '정도의 답변으로 끝냈지만...

그리고는 나의 자식이고 아니고를 떠나 이 청춘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같이 들더라.


그 일을 필두로 점점 이제는 내가 자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워가는 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남편의 권유로 앞장서서 나서야 하는 일을 하나 맡게 되었는데, 그 일을 앞두고 하소연하듯이 투덜거리고 있는 나에게 어린 청년이 말하더라. '빨리 잘하고 해치워버려야지'라고.

그 일이 정해지고 나서 나는 사실 남편에게 투덜대고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피할 수 있을까라는 핑계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그 한마디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왜냐면 이것 마치 대상이 거꾸로 되어있는 것만 같은 상황이어서였다. 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는 아이와 그걸 해 내야 하는 거라고 독려하는 엄마.

그게 보통의 상황? 혹은 내가 이제까지 겪고 보아왔던 일반적인 상황인데, 어째서 나는 되려 아이에게 이런 충고를 듣고 있는가. 살짝은 내가 우스우면서 이상하게 해내봐야겠다고 힘이 나더라.

어린 시절의 그를 내가 엄마로서 독려했을 때도 (물론 말은 좀 더 부드럽거나 논리적이었겠지만) 아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되려 내가 도움을 받고 배우기까지 할 수 있는 어린 청년이 되어버린 녀석.


실은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늙어버린 내 얼굴과 표정, 분위기에 스스로 실망하곤 했었는데, 나는 그냥 늙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의 젊음이 그에게로 가 그는 지혜로워지고 그의 시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시절이 지나가고 있는 만큼 그의 시절이 나가오고 있는 것.

내 모습이 점점 초라 해 지더라도 내 자식의 시절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나의 늙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열렬히 그의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나의 것을 내어주고 내가 흔들릴 때면 이젠 그의 지혜를 받아 바른 방향을 바라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그때 그때에 맞춰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내 손을 못 놓던 그 아이가 이젠 어엿한 가족 구성원으로 성장해 그 테두리 안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도 할 줄 아는 어린 청년이 되어가는 그 소중한 시절을 나는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 진짜 청년이 된다면 가족이라는 작은 테두리가 아닌 사회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도 긍정적 에너지를 가지고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부터 엄마로서 가르칠 생각이 아닌, 배울 자세로 아이를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에 그냥 인 건 없다. 그냥 흐르는 시간도, 그냥 늙어버린 모습도, 그냥 자라나는 청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