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Show를 잘 해내는 방법.
지난 4월이었다. 작년 12월쯤부터 자꾸 어딘가 이유 없이 아프고 기운이 없고 심심치 않게 뒷목에 열이 오르고 그러다가 딱히 최근 들어 과식을 하지도 않았는데 복부에만 미운 살이 그득그득 차 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 검사라도 좀 해봐~ ‘ 라는 말에 ‘ 별 거 있겠어.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했던 피검사.
그리고 그 결과를 들으러 갔던 날. 진료실 문이 열리고 의자에 앉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해맑게 말씀하셨다.
" 폐경되셨네요. 갱년기세요."라고.
지금 와서야 말이지만 그때는 문득 ‘ 저 사람이 무슨 말은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었다.
요즘 암에 온갖 희귀병들까지 ‘ 사연 ‘으로 치자면 조금 이름 폐경은 소재거리 조차 되지도 않겠지만은 개인적인 충격은 제법 강했다. 물론 종종 요즘 조기 폐경이 많다 든가 하는 뉴스를 보곤 했지만, 주변에 친구들에 언니들까지 한 번도 폐경에 관한 걱정 혹은 경험담을 들은 적이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껏 알 수 없었던 이 많은 이상한 증상들이 한 마디 말로는 다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도 분해서 나는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앞서 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난 젊은 시절부터 여러 가지 난치병을 달고 살았고 그러다 보니,
금주, 금연, 식단, 운동은 당연하고 흔한 차가운 물조차 시원히 먹지 않고 20년이란 세월을 관리하며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 이른 폐경이 더 억울했나 보다.
그날부터 나의 폐경기 Show는 시작되었다. 몇 달간은 몸이 무겁고 여기저기 쑤시고 뜨겁고 짜증이 나도 처져 있거나 참아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제일 만만한, 아니 편안한 남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고 소리치고 따져 들기 시작했다. 누가 옆에서 보고라도 있었으면 마치 이 ' 폐경 '이란 것은 남편의 잘못으로 시작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 출근길부터 사람을 쥐 잡듯 잡고 출근을 하고 나면 늘 후회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혼자 남게 되면 그 뒤로는 우울감이 찾아왔다. 변해버린 내 모습, 말투, 목소리톤 그리고 살이 쪄서일까 거울 속 내 모습은 왜 그리 갑자기 늙어버린 거 같고 뭔가 지저분해 보이고 그냥, 마냥 보기 싫었다. 그런 똑같은 반복의 하루를 3~4주쯤 보냈다. 머리로는 누구든 겪는 걸 몇 년 일찍 왔을 뿐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이 그걸 받아주지를 못했다. 어떤 날은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남편은 생각보다 그런 나를 나보다도 잘 참아 냈다. 아마도 TV, 유튜브 등 각종 매체에서 갱년기의 여성이 어떤지를 드라마로 코미디로 사례로 많이 접해서였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한 달이나 더 지났을까? 몸의 증상들은 여전했지만 하루 걸러 하루쯤 조금씩 그저 그런 날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틀 걸러 하루쯤 평안히 그냥 지나가는 날도 생기더라. 그렇게 결국 또 시간이 많은 걸 해결해 주는 거 같았다. 7월이 들고 요즘에서야 처음보다 부쩍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안타깝게도 몸의 증상들은 그대로다.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몸이 무겁고, 저녁으로는 가슴이 답답하고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고 무릎과 허리의 컨디션은 늘 정성이 필요했고 못난 살들은 늘 날 여자로서의 자존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컨디션에 따라 피부는 뒤집어졌다 나아졌다 했으며 이유 없는 눈물을 시작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셀 수 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생각이, 그리고 그 생각으로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사실 내가 무언가 애써 노력을 한 건 아니다. 그냥 나는 어쩌면 내 평생 처음 어떤 예고도 교육도 없이 찾아온 불가능해 보였던 난감한 Show를 내 마음 가는 데로 마구잡이 해버렸고, 이상해진 나의 모습에도 묵묵히 가깝게는 남편과 엄마와 아들이, 멀게는 친구들의 묵언이 나를 지켜내 줬다. 마치 이제 그 정도 살았으면 잠시 그렇게 지내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해 주듯이 말이다. 이건 칼럼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보는 내가 갱년기를 이겨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갑자기 갱년기를 이겨내기 위해 러너가 되지도 않았고, 화가가 되지도 않았으며,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그냥 무작정 내가 느끼는 대로 온몸으로 버티며 살아버렸다. 그랬더니 몇 달 못 가 원래의 나로 돌아와 있더라.
감히 보태보자면 우리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그게 갱년기든 우울증이든 번아웃이든 말이다.
오히려 대부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를 내세요. 힘을 내세요. 해 내세요. 시작하세요. 그냥 하세요. 보다 나 자신을 그냥 지금의 나로 좀 내 버려 주세요. 가 아닐까.
요즘 각종 SNS에는 수많은 어려운 때를 이겨내는 방법과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명언, 그걸 이미 해낸 사람들의 후기들로 우린 어쩌면 매일 조금은 기가 죽고 스스로를 탓하며 매일 다른 결심을 한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무조건 선이라는 것도 없지 않은가.
그냥 며칠이나 몇 주쯤 도태퇴어 있으면 어떤가. 나에게 '쉼'이라는 큰 선물을 주고 있는 중인데, 그걸 뒤처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굳이 죄책감이 들어야 하나?
그냥 우리, 얼마간은 온전한 "내"가 되어보자. 남눈치 따위는 살피지 말고,
이것도 저것도 아닐 때는 나 자신이 답이다. 그리고 그래도 정말, "괜찮다"
잠시 쉬어간다고 걱정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충분히 잘해왔다고.' 나 자신을 위로하자.
지금 이렇게 그냥 살아 있어 주는 거만으로도 고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