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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S Sep 03. 2024

너무 많은 이름을 가져버린 그녀들.

중년의 여성들에게

  오늘은 두 달에 한 번 있는 고등학교 베스트프렌드들을 만나는 날이다. 

  우리 셋은 고등학교 때부터 모든 면에서 각자 달랐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더 많이 달라져 있다. 하지만, 그녀들을 만나는 날은 매 번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모른다. 한 이틀 전부터 한정된 시간안에 지난 두 달이라는 수 많은 날들과 일들 중에 무슨 이야기를 공유할 것인지 미리 생각하게 된다. 그녀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입꼬리는 들썩거리기 일쑤다. 내가 그녀들을 만나는 걸 이렇게까지 고대하는 건 물론 그녀들이 좋아서가 첫 번째 이유이지만, 두 번째로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바로 고등학교생인 나이다. 그녀들과 함께 일 때 나는 잊고 있던 고등학교 때의 나로 돌아간다. 이미 많은 세월과 많은 일들을 겪고 자의든 타의든 어른이 되어버려 많은 표정과 제스처를 잃어버린 나이지만, 그녀들을 만나면 신이 나서 얼굴의 눈썹근육부터 치켜세우고 입근육들을 자유자재로 돌려쓰며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의 온 근육들을 움직여서 조금이라도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거기에 보태어 얼굴만으로는 부족해 오른쪽, 왼쪽 할 거 없이 팔근육과 손가락 근육까지 거들어 사실표현을 돕는다. 

  그녀들이 웃으면 나도 웃고 그녀들이 울면 나도 운다. 그간 있었던 일이 어떤 부류였냐에 따라서...


  그러다 보면 나는 거의 잊고 살았던 된소리의 속어를 쓰느라 잘 안 쓰던 혓바닥 근육까지 끌어다 된 발음 소리를 낸다. 그녀들을 괴롭히는 일이나 사람에 공감하기 위해서라면 더 나쁜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나는 사실 평소에 그런 말을 쓰는 어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이런 내 모습에 개운함을 느낀다. 뭔가 뱃속이 꼬여서 속 안에 가스가 가득 차 있다가 한 순간 풀리는 듯한, 마치 경직되어 있던 위장기관들이 막 운동을 시작하는 살아 있는 느낌이다. 그때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묘한 쾌감 같은 것이 느껴져서 흐뭇할 때나 지어지는 입술을 살짝 모아 조금 내밀면서 미소를 띠는 표정을 짓는다. 별스러운 일 같지만 이런 과정은 그녀들을 만날 때마다 진행되고 그녀들도 그럴 것이다.




  그녀들도 그러하다는 것은 아마도 어느 정도 커버린 아이들의 엄마, 나이 든 부모님의 딸이자 며느리, 어엿한 중년 남성의 부인으로 '나'말고도 이미 여러 가지 이름을 가져버려 늘 어깨가 무거워 약간은 경직된 삶을 살고 있는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에 나는 잘 알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나쁘지만은 않지만, 점점 더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리고 그 이름에 마땅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게 된다. 물론 그 책임과 의무를 어느 정도 수행할지는 자신의 선택이고 각기 달라 보이겠지만, 감히 말하건대 누구든 그 자리 그 상황의 나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리라. 심지어 최선을 다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내가 부족한 건 아닌지 죄책감을 가지기까지 한다.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과 상황들은 어른이 된 '나'를 괴롭힐 때가 종종 있지만, 항상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새롭게 가진 수많은 이름들이 있기 전에 '내'가 먼저였다는 것을. 

  땅따먹기도 그게 얼마만큼의 크기이든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주인이 아니던가. 현실은 늘 나에게 새로운 이름들을 더 강요하는 일들이 많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나만이 잊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어느 누구 이기 전에 분명히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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