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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Apr 28. 2019

명성황후 살해범은 역도산과 같이 묻혀있다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8>>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케가미 혼몬지라는 절이 있다. 도쿄를 자주 찾는 한국인들에게 절이라 하면, 친숙하기로는 아사쿠사의 센소지일테니, 비교한다면 이케가미 혼몬지는 위치나 분위기가 센소지와는 정반대라 생각하면 대략 근접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케가미 혼몬지 (사진출처:Yahoo Japan)


외국 관광객으로 북적임, 인력거, 그리고 상점가 같은 게 이케가미 혼몬지 앞에는 그러니까 없다. 대신 고즈넉함과 중요문화재인 5층 탑, 약간 언덕에 위치해 멋진 전망까지, 도쿄의 한적한 오후와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게다가 이곳엔 우리에게 더욱 각별함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까지 있으니 발길이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사찰 한 구석의 묘역. 그 안에 재일교포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묘가 있다는 것은 이제 꽤 많이 소개된 탓에 한국인들도 가끔 찾는다고 한다. 역도산의 흉상과 함께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비교적 잘 정비돼 있어 왠지 반갑고 좋은 느낌이다.


재일교포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묘


그런데 역도산의 묘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한 명, 우리에겐 매우 특별한 인물이 묻혀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오카모토 류노스케. 1895년 대한제국 황궁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주범이다. 일제 침략기 밀정이자 모략가이자 테러범으로, 전형적인 일제 침략 낭인의 삶을 살았던 오카모토 류노스케다.


오카모토 류노스케(출처:위키피디아)


일제의 음습하고 잔혹한 치부를 온몸에 담고 있는 인물이 이렇게 고요한 평온 속에 잠들어 있다는 게 놀라운 느낌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것이다. 표지판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전혀 짐작도 못할 만큼 소략한 묘비명만 새겨져 있다.


“1852년 8월 14일 에도(도쿄) 와카야마번 도쿄 부지에서 태어나 1912년에서 청국 상해에서 사망했다.”


평범한 삶을 살다 간 보통의 여느 일본인의 묘지라는 느낌 말고 무엇을 이 공간에서 눈치챌 수 있을까. 엄중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할 그의 삶에 관해 힌트라도 얻을 만한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고 있다. 파괴적이고 난폭한 삶을 살다 갔으니 사후에라도 조용히 잠들게 해 주려는 배려로 이해해야 할까?


역도산 묘 바로 옆에 있는 오카모토 류노스케의 묘


역도산은 남과 북 그리고 일본마저 그 삶을 평가하고 의미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이렇게 역도산을 당당히 내보이며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반면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일본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다. 그가 저지른 죄악을 적시해 널리 알려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역시 한국인만의 상식인 걸까.


어떤 것은 과도할 만큼 기억하고 의미부여 하는 그들이 또 어떤 것은 놀랄 정도로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있다. 그 극단의 대비가 이케가미 혼몬지 묘역에 나란히 누워있다.

상식의 불일치와 간극은 도쿄의 아름다운 사찰에서마저 결국은 느끼고 만다. 한일의 차이는 참으로 곳곳에 스며있다고 인정하도록 압박하는듯한 도쿄의 고즈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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