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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Apr 14. 2019

우에노에 왜 하필 동물원이 있을까?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6>>



도쿄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마치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에노로 발길을 옮기곤 한다. 왜 가는 걸까 생각해보면, 서민들의 활기가 있고, 그리고 공원이 있고 박물관이 있고 동물원이 있다. (게다가 그 동물원에는 판다가 있다)


우에노 동물원 홍보 사진 


과연 그렇게 흥미로운 시설들일까 의문이 있지만, 이 시설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건 좀 흥미롭다. 바로 그 일관된 흐름이 우에노의 묘한 아우라를 저변에서부터 드러내는 거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원과 박물관과 동물원.. 그렇다. 전근대 사회에는 없는 근대적인 시설이라는 점이다. 서구에서 들여온 근대적 사고의 산물이고, 이것들이 우에노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됐다는데서 우리는 우에노를 다시 볼 필요와 흥미를 느끼게 된다. 


전근대 시대 그러니까 도쿠가와막부 시절 우에노 일대는, 이곳에 있는 간에이지(寬永寺)라는 절이 소유하고 있었다. 왜 절이 그렇게나 넓은 땅을 소유하느냐? 물론 특별한 절이기 때문이다. 막부의 최고 권력자, 쇼군의 위패를 모시고 명복을 비는, 그 영혼을 모시는 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절은 도쿄에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도쿄 중심부의 죠조지, 또 하나가 우에노의 간에이지다.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후에도 도쿄를 지키겠다면서, 도쿄 동북의 닛코의 조그만 사당에 위패를 놓아달라고 유언했다. 


이에야스의 후손 쇼군들은 죠조지와 간에이지에 나뉘어 모셔졌지만, 이에야스와 더 가까운 곳, 그러니까 우에노의 간에이지가 중요하고 특별하게 대우받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세월은 흘러 19세기 중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메이지 유신 세력이, 막부를 전복시킨다. 막부를 지키려는 세력들은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을 곳곳에서 벌인다. 도쿄에서도 그런 결전이 벌어졌고, 막부 세력이 저항의 무대로 삼은 곳이 바로 쇼균의 영혼이 살아있는 곳, 우에노였다. 


1868년 우에노 전쟁은 메이지 유신세력의 승리로 귀결되고 성지는 파괴됐고, 이 넓은 지역을 어떻게 꾸밀까 유신세력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막부의 상징인 이 공간에서 뭘 해야 가장 의미가 있을까. 머리를 맞대던 유신세력들은 막부의 이미지를 지우자는 큰 원칙에 동의한다. 그리고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을 알릴 수 있는 근대적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먼저 공원을 조성하고 박람회를 열고, 미술관을 만들고 철도역을 세우고 동물원도 만든다. 또 분수도 만들고 에스컬레이터도 만들고...

도쿠가와 가문의 성지에서 근대문명의 전시장으로 극적인 변화를 실현한, 우에노는 말하자면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프로파간다의 공간이었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억은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하기도 전에 조선의 궁궐인 창경궁에 동물을 들여와 유원지처럼 꾸민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동물원이 된 창경궁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든 그들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지 이제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근대 시설이란 미명 하에 이전의 권위를 지워버리고 새 권력의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그 작업의 기술을 조선에서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에서는 자연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터무니없고 잔인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무도한 발상이 어디에서 오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서구 제국주의를 기를 쓰고 따라 하고 자신들이 장착한 서구 문물의 우월함으로 모든 권위를 인정받으려 하고, 또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 일본의 일방 질주가 서늘하게 다가온다. 


소박한 서민의 거리 곳곳에 박혀있는 근대적 시설들, 바로 저기에서부터 일본의 브레이크 없는 팽창이 시작됐다는 느낌 때문일까... 편안한 마음으로만 감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우에노를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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