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3>>
8월 15일이 되면 또 그들의 제사일이 되면 일본 정치인들은 2차 대전 A급 전범이 ‘모셔진’ 야스쿠니 신사에 몰려가고 한국과 중국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뻔뻔함을 맹비난한다. 연례행사가 돼버린 그들의 오만함에 질리고 역주행과 맹비난의 무한반복에 이미 지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실은 이런 게 더 궁금하다. 보통 일본인의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서 벗어나 일본인들은 어떤 상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집중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불편하더라도 냉정하게 그들의 평균선을 보는 것이 중요하고, 또 먼저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도쿄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 중 하나로 ‘진구 가이엔’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메이지 일왕을 추모하는 바깥 정원이라는 의미인데, 주말마다 많은 이들이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평화로운 도쿄 풍경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달리기 좋아하는 하루키도 때때로 이곳에서 뛴다고 한다.
이 공원을 위엄 있게 바라보는 화강암 건물이 있다. 이름 하여 성덕기념회화관. 1926년에 완공됐으니 거의 백 년이 다 돼 가는 건물인데, 미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됐고, 야간조명은 그 아름다움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진구 가이엔을 가본 한국인은 많아도 이 근사한 건물에 들어가 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은데, 아마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게 너무 멋져서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성덕기념회화관은 메이지 일왕 시대(1868~1912)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그림으로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때문에 아름다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예술적이란 느낌이지만, 매우 정치적인 장소임을 곧 알아차리게 된다. 보통의 일본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들만의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메이지 시기 가장 큰 사건이라 한다면 역시 조선을 식민지로 강탈한 그 엄청난 일이 으뜸일 것이다. ‘일한합방’이라는 제목 아래 , 숭례문 앞에서 조선인과 일본인들이 평화롭게 거니는 모습을 담은 그림과 함께 그 사건을 뭐라고 설명하고 있는지 보면, 이렇다.
“예로부터 한국과 정치 문화 등 특별히 깊은 관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대외문제는 조선에 관련된 것이 많아 청일전쟁 러일전쟁도 조선 문제가 직접적 동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일전쟁 후 한국에 통감정치가 시행되었는데, 명치43년(1910년) 8월22일 당시 조선정부의 동의를 얻어 병합조약에 조인했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인 스스로 평가는 층위가 매우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절대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소수이고, 침략역사를 반성 내지는 성찰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느 과거사를 말하느냐, 바로 이 문제다. 반성하자는 사람들도 그 생각이 단일하지 않다는 뜻이다.
1941년에 진주만 침공으로 시작된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반성하자는 사람이 가장 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미국과 영국 같은 구미 선진국과 무모한 전쟁을 벌여 나라가 망했으니, 처절히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시기가 올라갈수록 반성의 강도는 점점 옅어진다.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중일전쟁에 대해서는 태평양전쟁에 대한 것보다 반성의 태도가 훨씬 떨어지며, 1931년 만주를 침략해 만주국을 세운 시기에 대해서는 뭘 잘못했는지 애매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자 거기서 더 1910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그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반성의 강도는 거의 0으로 수렴해가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기본적으로 메이지 시대(1868년~1912년)는 비상한 각오로 나라를 근대화시킨 자랑스러운 시기라고 일본인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 정점에 조선 강탈이 있었다. 이 사실을 그들이 반성의 도마 위에 올릴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리의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게 현실이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하는데,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과거를 말하는지 분명히 하자고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가 다른 시기를 바라보면서 반성과 직시, 참회의 단어들을 현란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생각의 근원은 어디인가, 따져 들어가 보면 결국 식민지배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와 만나게 된다. 이른바 양심세력이라 부르는 일본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지만, 그 양심세력까지 포함해 일본인 평균의 사고에서 식민 지배를 어찌 이해할 것인가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두려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조선 지배를 담당했던 총독부 관료들의 회고는 현대 일본인들의 논리와 정서로 유포돼 왔고 지금도 유포되고 있다. 세상 일이란 어쩔 수 없고 조선인들의 항거도 이해하지만 우리로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담담한 듯 남 얘기하듯 그러나 할 말 다하는 일본인 특유의 화법과 느낌은 어쩌면 현대 일본인들의 정서에도 그대로 깔려있는 것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마음을 진정하고 그 회고들을 한번 읽어보자.
다나카 다케오(조선총독부 경무국장 정무총감 등 역임)
“국가도 생물인 이상 생물의 이치를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생물의 원리원칙을 보면 먼저 자기 보존과 확충이죠...그 결과가 어떻게 되냐 하면 결국 우승열패라고 할까 적자생존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된다라고. 우승열패가 될 경우 열패의 입장에 선 민족이 번민하는 것은 이미 선천적인 것이고 따라서 여기에서 레지스탕스가 일어나고 반항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로서 이제 막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키야마 쇼헤이(총독부 사무관, 강원도 학무국장 역임)
“병합하여 이민족을 통치하고 있다, 이건 이미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뭐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고 그 위에서 어떤 행정을 펼쳤는가 하는 문제를 거론하면 역시 그렇게 나쁜 정치는 없었던 게 아닐까 해요. 그러나 그러한 전제는 피통치자, 통치를 받는 쪽에서 보면 통하지 않지요. 본래 독립되어야 한다, 자유가 없다, 이런 생각 위에서 보면 어떤 선정도 나쁘게 파악될 수밖에 없다고....
야마나 미키오(조선총독부 세무과장, 총독 비서관 역임)
“그래도 다른 외국의 식민지 통치에서 보이듯이 원주민은 가급적 미개한 상태로 내버려 두라든가, 원주민에 관해서는 자연적인 흐름에 그냥 맡겨둔다는 식의 사고방식 그리고 통치자는 지배자로서 원주민과 절대 섞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사고와는 (일본의 지배는) 기본적으로 달랐고 역사적으로도 이는 앞으로 나오게 될 하나의 징표가 되지 않나 생각하는 겁니다”
야스쿠니가 아니라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아니라 보통 일본인들의 상식이 결국은 핵심이고 본질이다. 그들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강탈한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앞으로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영원히 다른 얘기를 하고 외면하면서 속마음은 자랑스러운 역사로 식민지 조선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또 무서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