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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Mar 05. 2019

하라주쿠는 언제부터 패션의 거리였을까?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 -2>>

도쿄의 수많은 역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역을 꼽으라고 한다면, 최고인지는 장담 못하겠으나 몇 손가락에 꼽히는 후보로 하라주쿠 역이 올라갈 듯하다. 백 년 가까운 역사도 인상적이지만, 역 뒤편으로 펼쳐진 메이지 신궁을 배경으로 한 분위기도 일품이라 생각한다.


하라주쿠 역


이 아름다운 역을 나오면 바로 하라주쿠 거리를 마주하는 것도 즐겁다.  이젠 우리에게도 설명이 필요 없는 명소가 됐지만, 특히 ‘하라주쿠 거리’라는 ‘현재’가 ‘하라주쿠 역’이라는 ‘전통’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듯한 구도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까...


그런데 기본적인 의문이 든다. 고풍스러운 메이지 신궁 앞에서 하라주쿠 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이국적이고 특이한 패션과 문화의 거리가 된 걸까?  


답은 하라주쿠와 가까운 요요기 공원에 있다. 도쿄 도심의 대표적 공원인 요요기 공원은 1945년 이전에는 육군 연병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일제를 패망시킨 뒤 도쿄로 진주한 미군은 널찍한 요요기 연병장에 주목하고 이곳을 주둔지로 낙점했다.


도쿄 한복판에 대규모 미군 주둔을 생각해보자. 군인도 군인이지만 그들만 들어온 게 아니었다. 가족들도 따라 들어왔고 워싱턴하이츠라는 미군 마을이 형성됐다. 그다음은 뭘까? 그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입할 상점이 필요했다.


미국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파는 좌판과 상점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옷가게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하라주쿠의 서구적인 패션거리의 탄생은 바로 점령자 미군과 그 가족을 상대로 한 옷 장사가 출발점이었다. 그런 출발에서 지금은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키는 핫플레이스의 상징이 된 것이다.


독특한 하라주쿠 스타일 (도쿄패션닷컴)



패전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이 거리의 정체성을 만들었다는데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 아이러니가 이 거리가 품고 있는 이면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좀 더 걷다 보면 곧 확인된다.


하라주쿠 거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잠들어 있다.

메이지 신궁에는 메이지 일왕이 누워있고, 그리고 맞은편에는 그들의 전쟁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신사가 자리하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선을 식민지로 끌고 들어간 두 주역이 백 년이 지난 뒤에도 하라주쿠를 굽어보며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메이지 신궁. 메이지 일왕을 모시는 신사. 하라주쿠 역은 메이지 신궁으로 인도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메이지 일왕이 세상을 떠나자, 메이지 신궁 조경을 위해 조선과 대만에서까지 나무들을 가져왔다고 한다.  대일본제국의 모든 국토에서 바쳤다는 상징성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우리에겐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참으로 힘겨운 공간이다.


그리고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침한 도고 사령관이 1934년 세상을 떠나자,  죽어서도 주군을 바라보게 하는 게 최고의 예우라고 생각해 하라주쿠 거리 언덕에 그의 신사를 지었다.

러일전쟁 주역 도고 사령관

1905년 러일전쟁 승리에서 1945년 패망까지, 그들이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을 하라주쿠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고 그 잔영은 지금도 하라주쿠에서 어른거리고 있다. 한국인 수난 역사의 시작과 끝이기도 한 그 시간들을 하라주쿠에서 느껴보는 건 어떨까.. 저 밝은 기운을 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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