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추리 May 04. 2019

전쟁에 끌려간 하치코 동상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9>>



도쿄 시부야 역 하치코 동상 앞은 늘 만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히려 약속한 사람을 못 찾을까 걱정될 정도로 혼잡하지만, 하여튼 하치 앞은 약속 신뢰 만남의 상징 공간이 된 건 틀림없어 보인다.


하치라는 개는 도쿄대 농학부 우에노 교수가 기르던 아키타 견의 이름이다. 주인이 죽고 난 뒤에도 늘 주인과 만나던 장소, 시부야 역 앞에서 주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충직하고 슬픈 이야기에 일본 사람들은 감동했다.

도쿄 시부야 역 하치코 동상


1932년 이 충견의 이야기가 아사히 신문에 소개된 뒤로 하치에 대한 열풍이 일면서 급기야 1934년 동상이 건립되기에 이른다. 하치라는 이름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公(공) 자를 붙인 하치코 동상이, 시부야 역 앞에 탄생한 것이다. 하치도 제막식에 참석해 자신의 동상을 지켜봤다. 하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지금의 하치 동상은 그때의 그 동상이 아니다.


미국과 전쟁을 벌이면서 만성적인 물자 부족,  특히 금속 부족에 시달린 일본은 1941년에 금속회수령을 발령한다. 한마디로 강제로 모든 쇠붙이를 거둬들이는 명령이다.


공원의 벤치, 동상, 사원의 종, 학교의 교문, 가정의 스토브, 솥 등을 여지없이 수거했다. 물론 녹여서 무기 같은 군수물자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다.


하치 동상도 1944년, 전쟁물자로 회수되고 말았다. 전쟁터로 꼼짝없이 끌려간 하치 동상!

전쟁이 끝나고 1948년 다시 하치 동상을 만들었다. 처음 제작한 조각가 엔도 쇼의 아들이 2대 하치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비슷한 처지의 동상들이 꽤 있다.

미츠코시 백화점(니혼바시점) 사자상


니혼바시 미츠코시 백화점 입구에 있는 사자 상은,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작업을 펼친  경우다. 1914년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사자 상을 모방해 만든 이 동상은 자진해서 해군에 먼저 봉납하는 형태를 취했다.

공출 대신 기증을 택한 것이다. 해군의 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신사에 악귀를 쫓는 역할로 활용되었고, 무기로의 몰락을 피할 수 있었다. 일종의 후방에서 안전한 근무를 했다고 할까?  


어쨌든 전쟁 뒤에 무사히 자기 자리로 돌아왔고, 백 년이 더 된 도쿄의 명물 동상으로 지금의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니혼바시 난간의 기린과 사자는 1911년 만들어진 것이다. 도쿄의 관리 담당자가 창고에 아예 숨겨놓아서 공출되는 것을 막았다.

도쿄 니혼바시의 기린 동상


실제 동물들의 수난에 비하면 동상 이야기는 실은 좀 한가한 느낌이다.


1943년 8월 16일 도쿄 공원과는 우에노 동물원에 맹수들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공습의 소란 통에 맹수가 우리를 벗어나면 큰일이라는 것이다.

동물원 측은 사살하면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할 거라 생각하고 모두 독살시킨다. 다만 백곰은 독이 듣지 않아서, 목을 졸라 죽이고, 사육사들은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사자, 코끼리 호랑이 표범, 곰 치타 뱀 등 27마리가 몰살됐다. 이 동물들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평화의 사절로 보내진 것들인데, 가장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우에노 동물원 위령비. 2차 대전 때 독살한 동물들을 생각하는 공간이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느낌의 도쿄는 이렇게 의외로 전쟁의 혹독한 기억을 곳곳에 품고 있고, 또 그 기억들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달리하면서도 적어도 다시는 전쟁의 비참함을 겪지 말자고 다짐하는 일본인들... 아마도 도쿄가 안고 있는 전쟁의 기억들이 평화의 다짐을 하도록 압박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그들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더 참혹한 전쟁을 또 겪은 우리는,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다짐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가장 큰 종교는 평화여야 한다는 다짐을 늘 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만든다. 도쿄의 하치가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성황후 살해범은 역도산과 같이 묻혀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