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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Apr 01. 2019

아베와 다른 하토야마? 아베와 같은 하토야마?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4>>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발언이 또 화제다. 아키히토 일왕이 곧 생전 퇴위하면, 그의 아들이 새 일왕으로 등극할 텐데 그러면 새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 어찌 보면 특별할 거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일본의 금기를 건드린 과감함이다.


일왕의 한국 방문은 필연적으로 어떠한 형태든 사죄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지금과 같은 최악의 갈등관계 속에서 일본의 상징이 일종의 ‘굽힘’을 보인다면, 일본 주류 사회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뻔한 일이다. 일본 사회에서 그런 제안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 ‘이례적’ 인물, 하토야마라서 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예상대로 한국에서는 이런 칼럼이 등장했다. 아베 총리의 그 무지막지함과 비교되는 하토야마의 아름다움!!! 그런데 그 분석이 흥미롭다고 해야 하나, 잠시 읽어보자.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이런 자세를 취한 것은 집안을 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동경대학, 스탠퍼드대학에서 수학했다. 조부는 50년대 최초의 자민당 정권을 담당하였고, 부친은 1970년대 외상을 지낸 정치 명가이다.....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외조부는 2차 대전 패전 후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을 기사회생시킨 기시 노부스케로 자민당의 본류다. 아베는 실제 권력을 행사한 무사에 해당한다. 무사는 명예를 굽히는 것을 패배로 본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국수주의자다. 한국에 대한 유감 표명은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김국헌, ‘아베 총리와 하토야마 전 총리는 왜 그렇게 다를까?’)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다른지는 참으로 궁금한데, 정말 이런 차이 때문일까? 한 사람은 정치 명문가 출신이어서 또 한 사람은 무사 집안 출신이어서? 과연? 하여튼 우리로서는 그 엄청난 차이를 읽어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데, 한발 떨어져 냉정해져야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을까? 


하토야마 전 총리와 여러 모로 대비되는 아베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2009년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낸 주역 중 한 명이다. 자민당 일당 집권체제인 일본에서, 단일 정당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자민당을 눌러버린 건 일본 정치사 최대 사건이었다. 


‘우주인’이라는 별명답게 공학박사 출신이라는 독특함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전향적인 사고와 정책이 우리의 호감을 샀다. 미국 일변도에서 한국 중국을 중요시하는 당시 민주당 정권의 정책 선회는, 이미 정권을 자민당에 다시 넘겨준 지금도 일본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정권을 탈환한 직후, 미국에 가서 굳이 ‘일본이 돌아왔다’고 두 번 세 번 다짐하는 배경에는 하토야마 시대 소원해진 미일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야스쿠니 참배 반대, 위안부 피해에 대한 적극적 공감 등 일본의 역대 어느 총리보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치권에서 은퇴한 지금도, 그의 소신은 강도를 높여가며 아베 정권을 비판하고 때로는 난처하게 만들기까지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유독 한 가지 문제만은 우리의 기대와 예상을 비껴가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평화헌법 개정 문제다. 그는 명확한 헌법 개정론자다. 아베 정권과 우익이 강렬히 요구하는 평화헌법 개정을 그는 오래전부터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해왔다. 전쟁 금지와 군사력 보유 금지를 명시한 헌법 9조에 대해 그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계속해오고 있다. 자위군이라는 이름으로 군대 보유를 명확히 할 것, 아베 정권이 헌법 해석을 바꿔 행사 가능하다고 선포한 집단적 자위권 역시 행사 가능하다고 아예 명시할 것 등을 이미 주장했다.


그는 ‘신헌법시안’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헌법 개정하자는 얘기를 하면 상대는 늘, ‘아 역시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있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말고 하토야마 총리도 할아버지 내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의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는 1954년 일본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기시 노부스케 총리 바로 전임 총리였다.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그는 총리로 취임한 뒤 헌법 개정을 가장 핵심적인 정권의 목표로 내걸었다. 말로만 한 게 아니라 헌법조사연구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헌법 개정의 물꼬를 트는 작업을 실제로 펼쳤다.


지금 아베 정권의 숙원인 헌법 개정 움직임은, 실은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가 만들어 놓은 틀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기 전에 헌법이 개정되는 것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던 기시 노부스케 못지않게 아니 더 간절하게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는 열망의 실현을 위해 주춧돌을 놓았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기시 노부스케처럼 전범은 아니었어도, 한때 공직에서 추방될 만큼 군국주의 일본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하토야마와 기시가 갖고 있던 상식, 그것은 ‘패전으로 부당하게 심판받았다’, ‘헌법도 우리 손으로 못 만들었다’, ‘그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런 그들이 차례로 일본의 총리가 된 것은, 이들의 상식이 잘못됐다고 전혀 견제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며, 이들이 만든 기틀이 지금의 일본을 떠받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들의 손자들이 또 차례로 총리가 됐다. 한 명은 극우의 정치노선을 걸어가고 또 한 명은 친한파 친중파임을 과시한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일본 내에서 이른바 양심세력, 양심적인 주장이란, 특히 주류 사회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큰 용기와 결단이 뒤따르는 일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먼저 인정해야 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아베 총리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의 사람이어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라, 일본 주류사회에서 성장했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하고 있어서 놀라운 일이라는 얘기다. 그런 인사들의 용기와 결단과 감내를 알아주고 소중하게 대하는 건 우리로서는 일종의 과제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일본 주류사회 인사들은 인적, 정서적, 논리적으로 과거사 주역들과 연결돼 있고, 영향받았고, 그 영향이 내면화돼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형성된 일본의 상식이라는 ‘큰 틀’이 분명히 있으며, 결국 그들의 ‘다름’은 그 틀 안에서 발생하고 작동하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본인은 우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납득하기 어려운 상식을, 정도가 다르지만 모두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바라봐야 그들의 실제 얼굴이 보이고, 실제 고민이 느껴지고, 실제 비전이 다가오고 비로소 연대의 지점이 드러날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아베와 하토야마는 다를까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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