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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Jul 23. 2019

불명예 퇴진했던 아베 총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18>>


1. 아베는 무모한 사람?


현재의 한일 갈등을 바라보며 이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자 귀결점으로 우리는 한 인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해 방식은 이견 없이 확고부동한 규정으로 굳어져왔다.  


“2차 대전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로 뼛속까지 극우의 유전자가 있으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미화하고 있으며, 결국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려 하는 군국주의자다”  


자위대 사열하는 아베 총리


이런 설명은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는 지적이지만, 일본의 모든 도발과 모든 불합리를 단 한 가지, ‘아베의 일본이라서’라고 단정하는 방식은 자칫 단선적인 이해,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렇다. 아베 총리의 ‘사상’이 시대착오적일 수 있지만, '현실 정치가' 아베 총리의 ‘방식’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봐야 할 건 그가 걷고 있는  ‘그만의 합리적 방식’이 도대체 뭔가라는 지점이다.


요컨대 자신의 목표만을 향해 무모하게 질주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니 그런 무리수를 취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설명이 더 정확하겠다.


아베는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현실 정치가이지, 자신의 신념과 함께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골수 사상가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2. 최연소 총리.. 사퇴..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이번이 두 번째 총리직 수행이다. 2006년 그의 나이 52살, 전후 최연소 총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자로 2006년 전후 최연소 총리가 된 아베 총리


정치 명문가의 엘리트, 아베 신조 총리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화려함의 정점이라 부를 만하지만,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불과 1년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단명 총리가 잇따르더니 결국 자민당은 정권을 민주당에 내주고, 아베는 정권교체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라는 수모에 가까운 비판까지 받았다.


2006년 9월에서 2007년 9월까지, 그의 첫 번째 총리 시절은 그에게나 자민당에게나 한마디로 명백한 실패였다. 그는 권좌에서 도망치듯 부끄럽게 내려온, 몹시 비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실패의 1년, 아니 인생 최악의 1년에서 그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그 1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2007년 7월 30일, 미국 하원에서 역사적인 결의안,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한다.


내용은, 2차 대전 당시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은 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사죄할 것, 그리고 이 내용을 교육을 통해 계속 알려나갈 것 등이다.


1997년 처음 결의안이 제출된 뒤 실제 의회 통과로 이어지진 않았는데 공교롭게 아베 총리 시절 그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의안이 미 의회에서 논의되던 당시, 일본 총리 ‘아베’의 '시대착오'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3. 실패의 기억.. 학습의 시간


2007년 3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에게 야당 오가와 도시오 의원은 미 하원 결의안이 통과되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몹시 부끄러운 처지에 몰리지 않겠는가? 그전에 뭔가 해결의 방안이나 전향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질의한다.


자신만만한 젊은 총리는 이렇게 답한다.


“관헌이 민가에 침입해 납치하듯이 끌고 갔다는 그런 강제성을 입증하는 증거는 없다”

“당시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생각할 때, 여성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했을 수 있다”

“그 틈에 끼어든 업자들이 사실상 강제 모집했을 수 있다”

“미 하원 결의안은 이런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가 있다”

“따라서 미 의회에서 결의안이 통과해도 사죄할 일은 없다”


일본 정부 차원의 잘못은 없고 업자들의 무리한 동원이 있었다, 그런데도 미 하원이 잘못 알고 결의안을 논의하면서 일본 정부에 인정과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그 생각 그대로 일본 정부 입장을 천명했다.


아베 총리는 답답하다는 듯 미 하원 결의안의 ‘부실함’을 지적했고 아베 총리와 생각을 같이 하는 일본 정치인들은 결의안을 막겠다면서 미국 언론에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10년 만의 결의안 통과라는 일본으로서는 충격의 결과로 나타났다.


사실은 이렇다고 ‘뻗대는’ 아베 총리 때문에 오히려 서구사회의 분노가 커졌고,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가 더 부각됐고, 유럽에서도 결의안이 나오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전쟁 범죄와 여성 인권에 둔감한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한 달 여 만에 아베 총리는 스스로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였는데 당시 모습은 누가 봐도 쫓겨나듯 몰락한 초라함 그것이었다.


2007년 자진 사퇴를 발표하는 아베 총리


아베 총리는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자신에게 부족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역사관을 국제사회에 그대로 노출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뼈저리게 느낀 시간들이었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자신의 생각 사이에 매우 큰 격차가 있고, 나의 상식이 국제사회에서 자칫 지탄받을 수 있구나 라고 생생히 경험한 시간들이었다.


자신의 역사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납득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세련된'  '좀 더 정교한' 그리고 서구 상식에 맞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걸 학습한 시간들이었다.


그는 한국을 납득시키거나 한국과 싸우는 것에는 일찌감치 관심이 없다.(한국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이미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있다)


그의 관심과 시선은 온통 국제사회가 자신의 상식을, 자신의 주장을, 자신의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고, 1차 총리 시절은 이런 아베를 만든 시간이었다.




4. 두 번째 총리.. 무엇이 달라졌나


그리고 2012년 그는 다시 총리가 됐다.


총리를 하다가 물러난 뒤 다시 총리가 된 사람은 전후 일본에서 요시다 시게루 총리와 아베 총리 단 두 명뿐이다. 그러나 요시다 총리의 첫 번째 임기는 1946년 미군정 시절이라 좀 특수 케이스라 할 수 있고, 정상적인 상황에서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총리를 한 인물은 아베 총리가 유일하다.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낙마와 휴식과 재등극을 통해 그의 방식은 변했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미국을 방문해 이렇게 외쳤다.


Japan is back 일본이 돌아왔다...


물론 이전 민주당 정권에서 미국과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선언이지만, 2007년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는 아베 총리는 다시는 무모한 역사전쟁을 펼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정확히는 역사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서구사회를 거스르는 방식을 쓰진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2차대전 때 일본이 공격한 진주만을 방문한 아베 총리


그런 그가 지금 강제 징용 배상 문제 그리고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문제 삼으며 국제사회에서 소리치고 있다.


아베 정권의 핵심 그룹은 면밀한 검토를 거쳐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국제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도(하여튼 1965년 한일협정이 있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이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2007년처럼 자신들만의 상식에 갇혀있음이 또 한 번 드러날지 아니면 국제사회로부터 뜻밖의 지지를 받게 될지, 그들은 아마도 비장한 마음으로 사태를 주시할 것이다.


우리에게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런 아베 정권의 방향성을 파악하고 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반일이냐 친일이냐 매국이냐 애국이냐 각자의 다짐을 묻기보다는, 냉철하고 치밀하게 국제사회에서 통할 우리의 무기를 점검할 시간이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나 반일 기운보다도 아베 그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진실성 있게 납득되는 그리고 뭔지 모를 뜨거운 한국의 설득력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베 그룹이 가장 갖고 싶고 부러워하는 것도, 바로 이 '뜨거운 설득력'일 것이다.


피해자의 ‘진실’은 힘의 세상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는 ‘특별한’ 싸움을 우린 해왔고 지금 또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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