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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Nov 09. 2020

누가 감히 그녀들을 '빠순이'라 폄하하는가?

<<그 사건 뒤에 무엇이 있나-23>>

         

1992년 2월 17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는 1만 5천 명의 관객이 가득했다.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인 이들이 열광한 대상은 미국의 아이돌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7시 반에 시작한 공연은 약 30분이 지나면서 점점 뜨거워졌고, 소녀들은 흥분했다.     

전 세계를 홀린 미소년들이 특히나 매혹적인 노래 '투나잇'을 부르는 순간,  소녀 팬들이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체육관 바닥에 방석을 깔아 대충 만든 무대 주변 좌석에 얌전히 앉아서 질서 있게 '관람'하라는 건,  군부대 위문 공연에서나 착안했음직한 무식하고도 무례한, 지금 생각해보면 팬들에 대한 고문이었다.  


열정을 참지 못한 소녀들은 우상을 향해 무대 쪽으로 몰려들었다.


빽빽한 공간에서, 열광한 팬들의 격한 움직임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낳았다. 서로 뒤엉키고 넘어지고 포개지면서 비명과 실신의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수십 명이 응급실에 실려가고, 공연은 중단됐다. 인파에 깔려 의식을 잃은 고교 2년생 박모양은 이틀 뒤 사망하고 말았다.  어렵게 성사된 공연에서 상상하지 못한 불행한 사고였다.      


정원을 훨씬 넘는 티켓 판매와 안전 요원 부족 등 공연 기획사의 준비 부실이 드러났고, 당연히 그날의 팬들은 굳이 말하자면 무책임한 상혼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사고 직후부터 우리 사회의 논의는 2020년 지금 상상 가능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으로 흘러나갔다.   


당시 ‘어른’들이 주목한 것은 이른바 ‘소녀들의 광란’이었다.  보기 싫었던 것일까, 불편했던 것일까, 낯설었던 것일까.  어린 팬들의 환호와 열광은 심각한 일탈을 넘어 차원이 다른 광기로 격상시켰다.      


아이들의 ‘미친 행동’(미쳤다는 표현은 당시 보도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집단 히스테리'를 사고의 원인으로 규정하고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지 살피지 못한 책임을 통탄하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가장 진보 매체인 한겨레신문의 사설은 지금 보면 당황을 넘어 난감할 정도다. 가장 리버럴한 매체조차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갇혀 있었던 당시의 도그마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설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식민지 문화는 여기까지 왔다 -뉴키즈가 짓밟은 우리의 딸들-       


다소 무시시한 제목 하에 사고의 성격과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공연기회사와 뉴키즈 온 더 블록)은 우리 사회를 벌집 쑤시듯이 한 그 낯 뜨거운 사건의 일차적 원인 제공자일 뿐이며 광란의 책임은 이성을 잃은 청중에 있다.... 8.15 이래 남한 사회를 지배해온 식민지 문화가 뉴키즈 대형사고의 주범이라고 단정한다. 일제의 군사문화와 퇴폐한 대중문화가 물러간 자리에 들어선 미국의 양키 문화는 우리 겨레의 민족 민중문화가 다시 일어설 자리를 가로채고 남한을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시켰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을 좋아한 팬들을 한순간에 광란의 죄인으로, 졸지에 문화 식민지의 한심한 아이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오염됐으니 오염을 제거하는 방법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어떤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클래식을 감상하는 시간이 10분이라도 있다면 외국 대중가수의 쇼에 이렇게 미쳐 날뛰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이런 황당한 인식과 토양에서도 바로 이해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고 이후 한류의 대폭발이 시작된 건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불과 몇 해 전 대통령을 직접 뽑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뤄졌지만,  대중문화 소비에서는 여전히 전체주의적 발상을 벗어나지 못한 게 1990년대 초반 수준이었고, 이런 곳에서 팬 노릇 하기란 어려움을 넘어 일종의 선각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열광과 사고의 현장을 지킨 팬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했다가 문화 식민지의 포로로, 집단 히스테리 환자로, 교화 대상으로 취급받은 그녀들은 이제 40, 50대 중년 여인들이 됐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BTS의 성공을 보며 그 뒤에 팬클럽 아미가 함께 있어 가능했다고 당연한 듯 얘기하고 있다. 대중문화에서 소비자란 무엇이며 그 역할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우리는 상식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식에 다다르기까지,  터무니없는 무시에 맞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한, 담백해서 파괴력이 엄청났던 열정들을 빼놓고는 도무지 이 역사를 설명할 길이 없다. 무도한 꼰대의 말도 안 되는 훈육에 저항한 그들이야말로 K팝 성공의 주역 중 주역일지도 모른다.      


그날 사고 당일, 공연이 중단되자 일부 열성 팬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공연 재개를 요구했다. 호텔로 가버렸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은 팬들의 항의와 요구에 다시 체조경기장으로 나와 공연을 마저 했다고 한다.      


숱한 매도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건 끝내 보고야 말겠다는 집요한 의지, 나의 열정과 감성을 눈치 보지 않고 표출하고야 말겠다는 직진의 용기야말로,  K팝을 키운 팬심의 본령, 열정 대한민국의 핵심 아니었을까...


그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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