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

by 이감자

명절이나 휴일에 엄마 집에 가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고, 별것도 아닌 옛날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평소엔 즐기지도 않던 낮잠이, 이상하게도 엄마 집에서는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엄마는 조용히 다가와 베개를 꺼내 머리맡에 받쳐준다. 그리고는 운전을 하고 왔을 아들의 손을 조심스럽게 주물러본다.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살랑살랑한 바람, 살며시 내리쬐는 햇살은 어쩐지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 햇살이 내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순간, 나는 문득, 아주 오래전 안방 창문을 타고 스며들던 햇살의 바스락거림을 떠올렸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몸이 유난히 약하고,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못하던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와 집 안에서 보냈다. 그날도 나는 안방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뜨개질을 하던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집 밖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엄마 치마의 까슬거리면서도 포근한 촉감이나 뜨개질 실에서 나는 은은한 냄새가 더 좋은 아이였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기운 없고, 자주 아프고,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 못 하던 아이.

그리고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던 그 시절의 엄마도 지금 생각해 보면 건강하진 못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야 했던 젊은 엄마는 늘 피곤해 보였다.

고생시키는 남편의 아내로, 또 몸 약한 아들의 엄마로, 그녀의 하루는 길고 무거웠을 테다.

그렇게 엄마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고, 나는 그 옆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빨래를 개거나 부엌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나는 꼭 엄마의 그림자처럼 말없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뜨개질을 마친 엄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베개를 꺼내 내 머리맡에 받쳐주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내 옆에 천천히 누웠다.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손끝이 내 몸을 토닥이는 감촉과 안방 창문을 타고 스며드는 햇살의 바스락거림은 묘하게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공기 중에 어렴풋이 감도는 삶아놓은 빨래의 냄새가, 느릿한 숨소리들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눈을 감고 있으니 생각이 점점 천천히 흘러가다가 어느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를 토닥이던 엄마는 내 옆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며 눈을 감고 있는 얼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 옆에는 파란색 뜨개질 더미가 느슨하게 엉켜 있었다.

엄마가 깨어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웠다.

그저 천장에 흐릿하게 새겨진 무늬를 바라보거나, 벽지의 이음선을 따라 눈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엄마가 잠든 세상은 금세 지루해졌다.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 보기도 하고, 누운 채로 발로 베개를 차서 허공에 띄워 보기도 했다. 그래도 따분했다.

마치 멈춰진 세상에 혼자 깨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엄마의 옆에 엉켜 있는 파란색 뜨개질 더미에 손을 뻗었다. 실타래 사이에서 딱딱하지만 가벼운 무언가가 손가락에 닿았다. 그것은 뜨개질 실이 감겨 있던 스티로폼 심이었다. 가운데가 뻥 뚫려 있고, 두 조각으로 쪼개져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스티로폼을 더듬었다. 가볍고 푸석한 감촉.

한 조각을 쥐고 만지작거리던 나는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TV 서랍에 있던 고무줄 통을 찾아 그중 하나를 스티로폼 심의 한쪽에 감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은 제법 활처럼 보였다.

팽팽해진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활은 만들었는데 화살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찰나 작고 뾰족한 이쑤시개가 완벽한 화살이 될 것 같았다.


다시 엄마 옆에 엎드린 나는 활을 잡고 이쑤시개를 걸었다. 엄마가 깰까 봐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창문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고요했고, 엄마의 느릿한 숨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나는 활을 겨냥했다. 재미 삼아 그냥 쏘는 것이었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었다. 그저 이 따분함을 깨고 싶을 뿐이었다.

손목을 가볍게 튕기자 이쑤시개가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짧은 비행. 그것은 정확히 엄마의 왼손 위에 힘없이 펼쳐져 잠들어 있던 엄마의 손등 위에 톡, 하고 박혔다…! 피는 나지 않았다. 작은 상처가 채 생기기도 전에, 이쑤시개는 스스로 힘을 잃고 엄마의 손등 위에서 이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쥐고 있던 스티로폼 활을 든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엄마의 입에서는 그 흔한 신음조차 터져 나오지 않았다. 움찔하는 반응도 없었다. 엄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쑤시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모르게 엄마의 손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시에 엄마가 깨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만약 엄마가 깼다면, 화를 냈을까? 아니면 그저 지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까?

그때의 나는 엄마의 손이 괜찮은 지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나의 장난 때문에 엄마의 잠이 깨지 않은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 복합적인 감정들이 아직 어린 나의 가슴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켰다. 마치 멈춰진 세상에 나 혼자만 깨어 있는 것 같았던 따분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를 낯설고 무거운 감정들이 채웠다. 나는 어서 엄마가 잠들기 전의 형태로 다시 누웠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엄마의 손을 어루만져보았다. 여전히 따뜻하고, 아직은 부드러운 내 엄마의 손.


엄마에게 미안해서 울었는지, 아니면 그저 놀란 마음에 멍하니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들의 손을 주물러주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의 손등 위에 이쑤시개가 닿았던 자리를 가볍게 만져보았다. 여전히 따뜻하고, 얇디얇은 피부의 감촉. 어떤 상처도 없었지만, 내 눈에는 그곳에 마치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힌 것처럼 선명했다.

엄마 손을 보고 만질 때는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려 온다. 처음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아팠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의 엄마를 떠올린다. 얼마나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그 작은 통증조차 느끼지 못했을까? 이쑤시개가 손등에 박혔다가 떨어졌는데도 깨지 못할 정도로 피곤했던 걸까?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야 했던 젊은 엄마는,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의 잠조차도 온몸으로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때 나의 어설픈 장난이 그토록 깊은 피곤함 앞에서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저 애잔할 뿐이다.


엄마의 손을 한참 동안 어루만지던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어릴 때 엄마 손에 이쑤시개 화살 쏜 적 있는데 기억나?”

“언제?”

“나 다섯 살? 자세히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엄마 손보면 계속 미안했다.”


“… 엄마는 너 키우면서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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