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차

아빠의 애착물

by 이감자

아빠는 자동차를 참 좋아했다.

남의 차나 비싼 자동차를 좋아한 게 아니라. 자기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를 참 많이 아꼈다.

남들이 볼 때는 별 볼일 없는 차였지만 항상 차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아빠는 내 기억 속에서 좋은 드라이버는 아니었다.

항상 거칠게 운전대를 잡았고, 가능하다면 교통법규도 많이 위반을 했다.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그 시절의 아빠들이 모두 그랬기 때문에 큰 잘못이 아니라고 정당화할 생각은 없지만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운전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아빠의 첫 직업은 음료 배달 트럭 운전수였다.

아빠와 나는 정확히 서른 살 차이가 났고, 그의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직업이란 게 있기는 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길에서 처음 엄마를 보고 반해 추파를 던졌을 때, 그는 음료 배달을 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음료수를 몇 박스씩 집으로 가져다주곤 했다. 음료 배달부가 어떻게 음료수를 그렇게 자유롭게 가져다줄 수 있었는지는 의아하지만, 엄마에게 잘 보이려면 뭐든 했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 아빠는 레미콘을 운전했다.

(엄밀히 말하면 어린이집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경계가 모호했고, 오히려 ‘○○학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동차가 트럭 믹서(truck mixer)라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그게 내 기억 속 가장 선명한 아빠의 직업이다.

그 시절,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는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을 묻거나 제출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Photo by Mitchell Luo on Unsplash


아빠는 늘 자신의 직업을 ‘운전수’라고 소개했다.

선생님들은 매번 아빠가 어떤 차를 운전하는지 캐물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빠의 직업을 그냥 ‘회사원’이라 적거나, 아예 회사 이름을 써넣기도 했다. 지금도 아빠가 무슨 차를 운전했는지, 직업이 무엇인지가 왜 그리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평생 내비게이션을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다. 오토 자동차를 운전한 시간은 채 6개월도 되지 않았다. 직업 특성상 아빠는 전국 팔도를 며칠씩 떠돌면서도, 오직 표지판만 보고 길을 찾던 사람이었다.

그때 아빠와 함께했던 건 낡은 테이프 몇 장과 심플 담배 한 갑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애착을 느끼는 물건이 있다.
내게 한때 만년필이 그러했듯,
아빠에게 자동차는
평생 그 자리를 차지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찾은 건 사라진 아빠의 자동차였다.

그 차는 갤로퍼 숏바디였다.

아빠는 소형 트럭, 대형 트럭, 레미콘 등 수많은 차를 몰았지만, 그 차가 아빠의 마지막 차가 되리라고는, 아빠도 나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운명이란 놈은 갤로퍼를 아빠의 마지막 차로 택했고, 아빠가 임종을 맞이하는 그 순간,

그 곁에 머물지 못하도록 했다.


아빠의 장례를 치른 후, 우리는 모두 그 차를 찾아 헤맸다. 차를 강탈해 간 놈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 놈에게서 아빠의 차를 되찾는 건 쉽지 않았다.

우리가 다른 모든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제발 차를 돌려달라고 애원한 끝에, 부산의 어느 강변에 방치된 아빠의 차를 되찾았다.

차를 찾아 부산에서 진주로 운전해 오던 작은아버지는, 길 내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느 날, 아빠가 낡은 왜건을 몰고 왔다.

그 차는 아빠가 평생 몰았던 유일한 오토 자동차였다. 아빠답지 않게 작고 아담한 차. 솔직히, 볼품없는 차였다.

그날, 아빠와 동네 마트에 갔다. 뭘 사러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내가 엄청 투덜댄 건 확실히 기억난다. 아빠는 마트 입구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던 싸구려 옷을 이것저것 살피며 내게 권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아빠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차에 올라타던 순간 나눈 대화가 남아 있다.

"이 차는 아주 잠깐 탈 거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차는 갤로퍼로 바뀌었다.


아빠는 나에게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열심히 살지 않은 시간도 많았기에, 아빠는 그런 다짐을 종종 하곤 했다.

"열심히 일해서 다시 좋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차도 큰 걸로 바꿀 거다."

"그때가 되면, 이 차는 네가 타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차로 되겠나? 나는 더 좋은 차를 탈 거다."

아빠는 크게 웃었다.


아빠는 분명 웃었다. 불편함도, 거부감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런데 가끔, 그때 내가 했던 말이 후회된다.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마치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분명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그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당시 내 말에 악의가 없었다 해도, 그 순간이 자꾸 떠오르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애착을 느끼는 물건이 있다. 내게 한때 만년필이 그러했듯, 아빠에게 자동차는 평생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납골당에 걸린, 음료 배달을 하던 시절의 아빠와 자동차가 함께한 사진, 그리고 우리가 힘겹게 찾아낸 아빠의 자동차 독사진을 볼 때면, 아빠에게 자동차가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보곤 한다.


어쩌면, 아빠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아빠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친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럴 때면, 조금은 불편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제, 아빠의 곁에는 우리가 없다.

우리 곁에도 아빠는 없다.

아빠는,

30년 전에 떠난 할아버지를 만났을까.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태우고, 하루 종일 길을 달리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를 공격한 썬더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