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리 Sep 05. 2024

예술가는 어디에서 오는가

삶에 지지 않으려 애쓰는 한 어설픈 아티스트

“저는 미술 전공 했고요, 언니들은 둘 다 음악 전공했어요.”라고 말하면, ‘예술가 집안이네’가 99%의 반응이다. 이어서 가장 많은 응답으로는 ‘부모님이 예술 쪽에 종사하세요?’라는 질문이 있다.


어렸을 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아했다. 나중에 많은 예술가들에게는 반석 같은 예술가 부모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DNA의 놀라움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우리 세 자매의 정서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궁금했다.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한 지 4개월 정도 되어간다. 아직 혼란스럽지만 내 과거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병이라는 틀에 내 삶을 가둘 필요는 없겠지만 이제야 과거를 지나 현재라는 땅에(겨우) 두 발을 디딘 느낌이 든달까.


매년 여름이면 아이들 성화에 가는 고향집이다. 갈 때마다 각종 호르몬들이 춤을 추면서 (지금은 왜곡되었을지 모른다는 이해를 가지게 된) 어린 기억들을 일으켜 세워 센티 해지게 만들었는데 올해는 한껏 풀이 꺾여 어쩐지 머릿속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물이 가득 찬 수경을 쓰고 보는 것 같았던 풍경들이 오늘은 새삼 선명하다.


뒷 산을 넘어가는 태양이 적셔놓은 광활한 노을을 보고도 예전처럼 쓸쓸하지 않다. 주머니에 욱여넣어둔 내 이름 세 글자가 새겨진 명찰. 그걸 가슴에 달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어린 날의 슬픔이, 어제 일 같았던 30년 전의 기억이, 색이 바래져 버린 액자 속의 사진 같이 느껴졌다. 현재가 선명해진 만큼 과거는 뿌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건조해진 눈으로 예술의 원천 같은 것들을 보았다.

“우리 엄빠 완전 아티스트네..”


어째서 그토록 낡은 것들을 좋아했었는지, 서울까지 가서도 동묘며, 종로며, 오래된 것들에 끌리듯 돌아다녔었는지. 대학 시절, 내 작품에 등장한 이발소며, 초가집이며, 낡다 못해 유물 같았던 그 앞에서 어쩐지 숭고함 비슷한 것을 느꼈었는지. 익숙함이라는 것이 내게 얼마나 익숙했었는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근원에 대한 원망 섞인 탄식이 안도와 희색으로 변하기까지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어쩌다 생각이 그런 곳에까지 미친 것이냐 하면, 내가 인정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 당연해서 꺼내 보지도 않은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걸 가지고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째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냐고 성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함과 인정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음을 알게 해 준 것은 내가 먹고 있는 콘서타의 영향이었을까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내 영향력이 인생을 통틀어 고작 핏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내 그릇이 간장 종지도 안된다는 그 사실에 안도하는 하는, 내게는 있을 수 없는 저녁이었다.


한 자리에서 60여 년을 뿌리 내려온 위대하고 낡은 두 아티스트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낡은 집에서 지나온 세월들로 많은 것들을 창조해 왔다.


인간과 삶을. 시간과 존재를.


그리고 나. 삶에 지지 않으려 애쓰는 어설픈 한 아티스트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