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리 Sep 05. 2024

스킨답서스로 10초 설레기

츤데레의 동네!


어쩌다 약을 안 먹으면 그날은 그렇게 졸리다. 어쩐 일인지 밥이 잘 먹히고 디저트가 당기더라니, 남편이랑 점심으로 먹은 순대국밥에 공깃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서야 아침에 약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서관까지 걸어가는데 졸음이 쏟아져 연신 하품을 해댔다.


아무래도 커피라도 마셔야겠다 싶어 도서관 아래에 작은 카페에 들렀다.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카페를 둘러보는데 싱싱한 덩굴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호기롭게 아이비 두 화분을 샀는데 시들시들하더니 죽어가고 있다. 영문을 몰라 답답하던 차에 덩굴 식물을 보니 궁금한 게 많아졌다. 이 바닥 k-아줌마 9년 차답게 서론도 없이 바로 사장님께 직진 질문을 했다.


 “이 덩굴 식물은 뭐예요?”


 잘은 모르겠지만 스몰토크에 강자 같으신 사장님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노련하셨다.  


 “아, 스킨답서스요.”

 “아.. 옆에 있는 건 아이비 종류일까요?”

 “아니요, 아이비는 그 단풍같이 생겨가지고..”


 오케이 이때다 싶어 고민 상담소 모드로 들어갔다. 아니 제가 아이비를 두 개 샀는데요 어쩌고 저쩌고. 그랬더니 아이비가 어려운 식물은 아닌데 실내에서 키우기 은근히 어려운 식물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랬구나. 예뻐서 오래오래 키우고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데스크 바로 옆에 작은 유리병에 꽂힌 또 다른 스킨답서스 한 줄기가 보인다. k-아줌마의 궁금증은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나온다.


 "스킨답서스는 수경재배도 하나 보죠…?"


이런 거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겠지만 어쩐 일인지 인터넷 선생님은 아이비를 시들게 한 나의 답답함과 속상함을 몰라줘 정이 안 가기 때문에 나는 물러설 곳이 없다.


 "네. 잘라서 담가놓으면 또 뿌리가 자라요. 그거 그냥 가져가세요."

 "어머! 그래도 돼요?"


 대화하는 새 커피가 나왔다. 데스크를 빙 둘러 나오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투명 비닐에 가위까지 들고 나오시면서까지, 유리병에 꽂혀있던 스킨답서스를 담아 주셨다. 꽃집에 온 줄.


 "이거 기르다가 길어지면 또 잘라서 담가보세요. 그럼 뿌리가 나니까.."


역시. 인터넷 선생은 나랑 안 맞아!

커피와 투명 봉지에 담긴 새 친구를 들고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오는데 "그거 죽으면 또 와서 가져가세요." 하시는 사장님. 뭐지, 이 정겨움은! 사장님이 딱히 살갑고 친절해 보이지는 않으셔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따스함이었다.  


오늘 비닐봉지에 담긴 한 줄기의 스킨답서스로, 아니 덩굴 식물로 잠시나마 연대했던 사장님과의 짧은 대화로, 20초 행복했다. 행복이 별거간. 같은 진부한 멘트가 절로 나왔다. 죽이지 말고 잘 키워야지. 그래서 나중에 사장님한테 가서 자랑해야지. 생각하며 아끼는 유리잔에 꽂아두었다.


10초 더 설렜다.


- 츤데레의 동네, 나랑 참 잘 맞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