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0.00
(연습장, 파인테크, 스킨푸드 매니큐어)
어느 날, 난데없이, 검은색 펄 매니큐어에 꽂혀서 샀는데 원래 손톱에 뭘 하질 못하는 성격이라 묵혀뒀다가, 또 어느 날, 난데없이, 그 매니큐어가 눈에 띄어서 그리게 된 그림. 그림의 시작은 항상 내 생각만큼이나 난데없다.
정말 마음 가는 대로 검은색 매니큐어를 죽죽 그어놓고 머리가 아니라 척수로 그림을 그렸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내 손은 그림을 그리고 있고.
(연습장, 파인테크, 분홍 형광펜 )
생각하는 동안 마구잡이로 그어 놓은 8자 위에 벚꽃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그림.
당시엔 왠지, 진짜 무의식적인 '낙서'에서부터 시작된 그림이 좋았다. 하지만 그 낙서를 내가 만족할 만큼 다듬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못 내어 놓는 막돼먹은 성격 탓에 버린 그림만 몇십 장, 방치된 그림도 몇십 장. 이상한 강박관념 이거 빨리 갖다 버려야 되는데.
(연습장, 파인테크, 노랑 형광펜)
이건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이 내가 아는 빨간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 꽃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아 그린 그림. 그래서 꽃은 빨간 동백꽃이고 노랑 형광펜 같은 걸 끼얹은 듯 하다.
"내가 알던 동백이 그 동백이 아니었다니!"
세 그림을 굳이 공통 주제로 묶자면 꽃/여자/눈물, 지금도 참 좋아하는 제재들이다. 셋 다 나와 관련이 많은 단어들이라 그런가? 요즘은 이렇게 종일 펜으로 종이 파는 그림은 잘 그리지 않지만, 꽃과 여자, 눈물은 계속 그리는 중으로, 최근에는 아예 꽃말을 주제로 해서 그리고 있다.
새 그림을 올리려면 옛날 그림부터 올리는 게 순서인 듯해서 일단 올렸지만, 더 옛날 그림들이 눈에 띌지도 모르고, 지금 작업 중인 그림을 올리고 싶어 질 수도 있으니 앞으로의 업로드 순서는 아무래도 보장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