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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블리 Apr 05. 2016

00. TEST

2014.10.04



때는 바야흐로 작년 10월, 갑자기 수채화 용구에 꽂힌 어느 날. 수채화 물감은 오래 쓸 거니까 괜찮은 걸 사자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수집한 뒤, 며칠간의 망설임 끝에 전문가용 수채화물감과 붓 몇 자루, 물통에, 심지어 수채화용 종이까지 질렀고, 그 모든 것은 현재 한 폭의 수채화처럼 방 한편에 잠들어 있다.


도착한 그 날만 신 들린 듯 붓질 몇 번 하고 잊혀진 그들에게 치어스! 정말 앉은자리에서 얼굴만 한 대여섯 개 찍어냈는데,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서 어디에 올리지도 않고 방치 중이었다. 그런데 막상 올리려니까 어디 갔는지, 다 증발해버렸다. 무의식 중에 다 갖다 버렸나?





내 성격은 가끔 나도 감당이 안 되곤 한다. 그림이건, 글이건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다 외면해버리고, 중도 포기해버려서 제대로 완성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수채화는 자연스러운 번짐이 매력인데, 그 번짐마저 내 성에 차게 번지지 않으면 그 상태로 손을 딱 놔 버리기 때문에 더더욱 완성하기 힘들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하니까, 조만간 수채화 용구를 다시 꺼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 마르는 시간 기다리는 것도 성질 급한 내겐 죽을 맛이고, 조금만 삐끗해도 다 때려치우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게 되는 일이란 건, 늘 있으니까.


마치 사랑에 빠지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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