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꽃에 얽힌 설화는 많지만, 그중 꽃말과 가장 긴밀한 설화는 다음과 같다.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자 그에 항거하기 위해 목숨을 끊은 아내의 무덤에서 난 꽃이 봉선화인데, 조금만 건드려도 씨가 톡하고 터지는 것은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봉선화의 의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봉선화의 경고는 우습게 받아들여지기 일쑤이다. 어렸을 적 터진 씨는 빻아서 분칠 놀이를 하고, 꽃과 이파리는 찧어서 손톱에 얹고, 그러고도 첫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아마 나는 남편에게 소박맞은 여자의 경고를 우습게 안 죄로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닐까.
피고 질 때까지 곱게 모셔 감상하는 장미나 백합 등의 타 꽃망울과는 달리, 지기도 전에 목이 꺾이고 팔다리가 잘려 남의 손톱을 물들이는 게 일생인 봉선화라면 저주를 내릴 법도 하지 않은가. 어쩌면 첫사랑은 '첫사랑'이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기보다는, 간악한 봉선화가 고작 그 정도 일로 저주를 내려 실패했다고 믿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남 탓으로 돌리는 게 가장 마음 편한 일이니까.
아마 내 사랑은 네 탓으로 흘러간 것 같다,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