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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발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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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블리 Apr 05. 2016

셋을 세면 당신은 깊은 잠에 빠집니다

불면증을 앓던 나에게,

셋,

어린왕자는 양들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감색 망토와 울을 한 빨래통에 넣은 것이 화근이었다 넌 밤에 인 보풀이 너무 밝아 눈을 감을 수 없다 했다 그럴 때마다 넌 겹눈으로 쉼 없이 양들을 그렸다 네가 그린 세 구멍으로 순수가 기어들어간 날 그는 육백십이마리의 양에 짓밟혔다 넌 불면의 입에 법복을 쑤셔 넣었다 벌거벗은 판사의 해머가 불면의 머리를 내리치며 깡, 무기징역 너는 더 이상 밤을 세지 못한다     


둘,

낡은 여우 목도리는 길이 들어 있었다 누린내는 목이 메도록 질겼다 밤새 이를 갈지 못 해 송곳니는 여물어 갔다 그녀가 간을 끊고 혀를 잘근댈 무렵 넌 둘을 되뇔 순간을 잃었다 넌 씹어 뜯은 새끼손가락을 양 우리에 폐기했다 늘어진 붉은 실과 구멍 너머로 뛰어들던 그녀의 비명을 기억한다 (네 멋대로 씹) 왜 물어뜯었나 묻지 못 해 차라리 묻힐 셈이었겠지 명이 아홉이라던 그녀는 마지막 밤을 북녘에 내려놓았다     


하나,

바오밥나무에는 가끔 유리관이 맺혔다 장미는 관 한 켠에 불면이 눌 곳을 꾸어주었다 그녀의 들숨이 가빠진 자리엔 날숨만이 괴었다 넌 불면에게 그녀의 사인은 ―사고로 인한―질식사,라고 진술할 것을 권했다 세 구멍의 폴리스라인이 해제되었다 양껏 부푼 유리체 두 알이 별 볼일 없다 하얗게 여며진 숨 때문에 관 밖은 보이지 않는다 흘러버린 혀를 푸줏간 살덩이인 체 휘돌려 볼 생각이다 숨이 차 전할 수나 있을까, 굿나잇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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