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를 향해 가는 길, 신호등을 건너는데 누군가 말을 건넨다. 세상에 프라도 미술관 가이드님이다~!
우연한 만남이 무려 세 번째이다.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심혈을 기울여서 한 지역당 하나의 투어를 신청했다. 미리 정보를 준비하지 못해도 현지의 역사, 명소, 맛집, 유용한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이었다. 혼자 다니니까 사진을 잘 찍어준다는 리뷰가 있는 분으로 선택한다.
운이 좋게도 대다수의 가이드 선정은 성공이었다.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의 인도자는 사진도 잘 찍었지만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다른 팀들이 모르는 숨은 스팟을 찾아내고 천편일률적인 방법이 아니라 유연하게 가이드를 했다.
스토리텔링의 대명사 세비야 담당자는 반나절 동안 그의 스토리텔링에 스페인 대장정 역사가 그려지고 역사 속 주인공들이 오가는 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상대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가이드들도 있었지만 타산지석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일처리 방식의 아쉬운 점이 크면 클수록 나는 직업인으로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까 되돌아봤다. 좋던지 아쉽던지 그들로 인해 풍성했던 여행지. 존경스러운 분들이 나를 살찌웠다.
파리를 연상시키는 샹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안내되는 여행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그녀는 유학생, 오트쿠튀르 만들기를 배우면서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었다. 유일한 나 홀로 여행자이다 보니 가이드 옆 자리에 앉게 되어 일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십수 년 전 드라마로 유행했던 ‘한 땀 한 땀’이라는 표현이 정말 맞는 오트쿠튀르. 단추. 레이스 등 일상복에서 만날 수 없는 고상하고 독특하고 화려한 옷들을 만드는 일이었다. 오트쿠튀르 의상실이 없어서 파리로 유학을 왔다니 배울 수도 일할 수도 없었을 때 얼마나 답답했을까? 굳게마음먹고 온 타지에서 적응하면서 공부하고 방학에는 투어 일을 하면서 지냈고. 이번에는 인턴을 하게 되었다니 잘 되어 정직원도 될 수 있는 의상실과 연결되길 응원했다.
그녀는 파리에서 몸이 좋지 않을 때 먹는 영양식이자 맛있는 음식이라며 Soup de onion 숲드 오뇽, 양파수프를 추천해 줬다. 구글검색으로 손쉽게 맛집을 찾는 방식도 알려줘서 여행기간 내내 유용하게 활용한다. (이 식당을 나중에 지베르니에서 만난 원희 님에게도 알려준다.)
고객 입장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받으면 좋지만 버스에서 졸음이 쏟아지는 눈을 부릅뜨며 듣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가급적이면 이동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안내를 자제하신 배려도 돋보였다. 아마도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신 것 같았다. 샹송음악을 넣은 첫 시작이 멋지다고 칭찬해 드리니 자신의 기획이라며 기뻐하셨다. 예술을 하면서 일터에 신선하게 접목시키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프라도 미술관 가이드를 통해 프로 정신이 무얼지 생각했다. 그녀는 추천하기 전에 모든 것을 직접 먹어보고 또 발견해서 여행자들에게 제공할 자료를 업그레이드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기획사를 통해 받은 투어가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추구하는 것들이 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기왕이면 전문적인 일로 생각하고 즐기면서 일에 유익한 정보를 쌓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프라도 미술관 투어팀과 일정을 마치고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살았다?!다른 가이드들이 이끄는 투어팀들을 유심히 봤다. 우리 팀처럼 자리를 이동해서 같은 그림을 다른 자리에서 관찰하며 사색하는 생생한 설명을 듣는 팀은 없었다. 그래서 가이드가 누군지에 따라 경험의 깊이가 다르다는 차이를 더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를 예상외의 장소에서 만난다.
식당의 안쪽 깊이 자리를 잡으러 들어갔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어? 마드리드에 아는 얼굴이 있을 수가 없는데? 아, 가이드님이다. 며칠 전에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났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기억을 하신다. 그날 함께 했던 모든 분들이 열심히 듣고 반응해 주는 미술관 매너맨들이어서 기억이 난다고 한다.
어떻게 이 식당을 오게 된 건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해서 대화가 한참 이어지면서
스페인 인상파 화가 소로야의 미술관을 안내받는다. 한 번도 추천을 받지 않은 곳이라 반가운 마음에 저장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소로야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보니 문득 쉬는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닌가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 마주치기 싫었다면 '일이 있다'면서 처음 만났을 때 일어났을 거예요.
고마운 말 한마디에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제안으로 난 소로야 미술관을 방문했고 아란후에스 궁전을 방문했으며 궁전 앞 치즈케이크 맛집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보내고 인증사진을 보내며 덕분에 잘 즐겼다는 감사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진심으로 즐겨줘서 고맙다며 좋아했다.
난 가이드님을 통해 누릴 수 있었던 그림지식뿐 아니라 맛집, 궁전투어 등 하루가 행복해서 그녀에게도 내가 느낀 행복을 드리고 싶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드실 수 있도록 치즈케이크 쿠폰과 그곳까지 가는 기차왕복 쿠폰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지만 그런 쿠폰을 판매하고 있지는 않잖아?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찌 방법이 있을까?
돈? 돈! 그래 돈이야. 한국에서 선물로 돈을 주는 건 이상하지만 해외 투어가이드에게 돈을 건네는 것은 팁 개념이니 전혀 이상할 게 없잖아. 이렇게 고민고민했는데 그녀는 근무를 하고, 난 여행을 다니니까 시간대가 맞지 않겠구나 싶어서 아쉽게도 생각을 접는다.
며칠 후, 톨레도를 향하던 아침. 호스텔에서 짐 보관비를 무려 10유로를 받겠다고 하니 황당했다(이렇게 허름한 호스텔이 짐 보관비까지 받다니 너무 한 거 아냐? 나중에 낯선 남자와 원룸에서를 읽어보시면 안다.) 하루에 5유로. 나는 곧 돌아오니까 48시간 짐보관이 아니라 30시간 전후라고 강조했지만 이틀이니까 10유로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얄미운 그녀.
“너에겐 방도 없어.”
라는 말투로 나를 어이없게 했던 그녀잖아. 그녀라면 당연한 일이지. 순순히 현금인출기를 향했고 10유로를 인출할 때
-어차피 수수료를 내는데
라는 생각에 일부러 더 많은 금액을 인출한다. 현금을 쓸 일이 생길 건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돈을 쓸 일이 생긴 거다.
다시 만난 가이드님에게 팁 드리기.
이렇게 넓은 마드리드의 횡단보도에서 세 번째로 다시 마주치다니! 고마운 마음을 담아 드리고 싶었던 팁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딱 맞는 우연에 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면서 마음을 담아 드렸다. 예상대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톨레도를 향해 출발하던 발걸음이 더욱 흥이 났다. 그리고 톨레도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