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을 바꾸세요.
명백한 나의 잘못으로
반복적으로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마치, 칼이나 가위를
미숙하게 사용해서
반복적으로 내 몸에 상처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과 같다.
한 두번의 실수로 베일 수는 있지만,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힐 수는 없다.
우리 마음에, 우리 자신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해를 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다.
나의 미숙함이나 잘못이
타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에서 타인과 관련된 상처를 입게 된다.
타인이 직접 가한 상처든,
타인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내가 상처라고 느끼든 말이다.
이런 경우, 타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상처들이 명백한 나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상처를 입기 직전에
눈에 보이는 것은 타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상대에게 심한 욕을 해서,
상대가 나를 밀어 넘어뜨렸다면,
그 상처가 어찌 타인 때문에 생긴
상처라 할 수 있겠는가.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내 마음의 상처들 중 상당수는
명백한 나의 잘못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아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심리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자책하지 말아야 할 때는
자책하고,
내 탓임을 인정해야 할 때는
인정하지 않는
모순 속에서 ,
우리의 상처 모두는
타인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타인이 입힌 상처라면,
타인에게 사과를 받고,
타인이 내 상처 치유에 동참해야 하며,
나는 수동적 존재로
내 상처를 외부에 맡겨야 하지만,
나의 잘못으로 시작된,
타인과의 관계 속에 만들어진 상처라면,
상처를 예방할 방법 또한 알아낼 수 있다.
나 자신을 고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나의 잘못이 어느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는지는 알아내 수 있다.
서투른 칼질로 손을 자주 베인다면,
칼이 아니라 가위를 사용하도록
환경과 조건을 바꾸면 된다.
고속도로의 1차선으로 운전할 때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자주 붙는다면,
2차선으로 변경하고 조금 천천히 가면 된다.
나의 잘못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쩌면 불가능하기 까지 하다.
내가 가진 단점들, 잘못이 잘 발현되는 상황에서
내 단점과 잘못들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으로
나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이혼을 하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일상은 매우 작은 여러 조건으로부터
매일 매일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기니까.
내 마음에 상처가 덜 생기도록,
치유할 일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나 자신을 고요히 바라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족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외면하고 싶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