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시경만 같아도 #10

엄습하는 불길함

by 영순

내시경을 마치고 먹은 첫 끼는 죽이었으므로,

나는 일을 마치고 먹을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즐겁게 일을 했다.




"저녁은 진짜 맛있는거 먹어야지!"


"삽겹살을 먹을까? 매콤한 것을 먹을까?"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뭔가 잘못 먹어서

설사를 하기 전에 오는 신호와 흡사했다.




잠시 뒤에,

화장실에 가니, 역시나 설사였다.


그런데, 보통의 설사가 아니고,

대장 내시경 하기 전날

장을 비워낼 때처럼

순수한 액체가 쏟아져나왔다.




"죽을 너무 많이 먹었나?

해물죽 말고, 쌀로만 된 죽을

조금만 먹었어야 했나?"


괜한 자책이 몰려왔다.




그리고 변기를 내려다보며

변상태를 확인했다.




온통 피였다.

일반적인 설사가 아니라,

피가 조금 섞인게 아니라

순수하게 전부 피였다.




너무 겁이 났다.


"뭐가 잘못 됐나?


검사가 잘못 됐나?


어디가 찢어졌나?"




이때는 병원의 진료시간이 끝나서

다시 병원에 가볼 수도 없는 때였다.




어느 병원이나,

검사 후 이상증상이 있으면,

즉시 병원으로 연락하라고 하지만,

그건 언제나 그 병원이 진료중일 때 이야기다.


진료가 끝나면,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가정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환자의 응급상황은

전후사정을 전혀 모르는 응급실에 가서,

응급실의 다른 환자들의 대기 상황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단은,

좀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내시경 후니까, 어딘가 소량의 출혈이

있을 수 있는거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을 마치고, 씻고 침대에 누워 쉬는 내내

아랫배가 부글부글 했다.

가스가 차는 게 설사하기 직전의 신호였다.




다음 날 아침에 병원 문 열자마자

가볼 생각으로 잠을 청하는데

그냥 잠들 수 없을만큼 배가 살살 아파왔다.


다시 화장실에 갔다.

상황은 아까의 상황과 같았다.

설사였고, 변기를 내려다보자

온통 피였다.




극단적인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밤 12시인데, 응급실에 가야 하나?


지금껏, 몇번 응급실에 가봤던 경험으로는

지금 응급실에 가봐야 아무 의미없다.

일단, 내일 아침에 병원 문 열자마자 가봐야겠다."




나는 그날 밤을 꼬박 샜다.


새벽 4시쯤 온통 피로 된 설사를

한 번 더 하면서 말이다.


대변에 피가 섞인 것이 아니고,

전부 피였다.




피를 많이 흘리면 위험하다는 상식이 있으니

나의 불안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공포로

공포는 다시 더 큰 불안으로 그렇게 돌고 돌며

내 마음을 극단적으로 몰아갔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했어도,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때때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은

어찌 할 수 없이 오롯이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다.




얼마나 더 큰 일이, 더 안 좋은 일이 다가오는지

알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내버려 둬야할 때가 있다.




그게 하룻밤 정도라면,

견딜만 하겠으나,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 모든게 좋아진다면,

견딜만 하겠으나,

우리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하룻밤을 꼬박 마음의 지옥에서 고통받고 나니,

아침이 밝았다. 새벽 6시다.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온 후,

씻고, 천천히 옷을 입었다.


그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오전 8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