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시경만 같아도 #9

간절함의 끝

by 영순

내시경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면서,

정말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지만,

첫 끼는 부드러운 죽으로 시작하라는

병원의 안내를 무시할 수 없어

죽집으로 향했다.


해물죽을 특으로 시켜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런 저런 검사나 몇 번의 수술로

금식을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금식 중에는 맛있는 음식은 커녕,

어떤 음식이라도 먹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아니, 목이 마르지 않은데도,

물 한모금에 그토록 절절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보통의 우리다.




하지만, 그 간절함 뒤에 이어지는
감사함과 행복함은
첫 물 한 모금과 첫 끼를 먹고 나면
모두 사라진다.




감사해야 한다고

여러 종교가 아무리 외쳐도




감사해야 한다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아무리 외쳐도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것, 결핍된 것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가진 것에 감사하며,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여러 위협으로부터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을까?




다가오는 사자나

홍수로 범람한 강물을 외면한 채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거듭 외치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면 말이다.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을 가질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의 삶을 살면서, 나는

처음에는 가졌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잃을 뻔 했다가 되찾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잃게 되는 것이 더욱 많아진다.




인간은 본래 감사하도록
세팅되어 있지 않은데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감사함이 커지는 것은
가진 것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은 아닐까?




감사함을 모르는 것이 인간이고,

감사함을 모르는 것이 젊음이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그래서 아름답기도 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