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 올려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는 이런 게 있었다.
물을 조금 넣고 손잡이를 위아래로 열심히 저으면
물이 나오는 기계.
처음엔 너무 신기해서 내가 하겠다고 우겼지만,
몇번 하다보면 힘들고 신기한 것도 사그라 들어서
나중엔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는
누군가를 위한 분노, 원망, 미움은
힘들더라도 열심히 끌어 올려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것이 아래에 쌓여있는 한,
아무리 좋은 것들을 위에 쌓아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는
누군가를 위한 사랑, 믿음, 위로는
힘들더라도 열심히 끌어 올려 그에게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꺼내어 표현하지 않는 한,
상대방을 살릴 수도
나를 살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재미없다고, 힘들다고 쳐다보지도 않던
물을 길어 올리는 저 기계를 보니
내 마음 속을 얼마나 오래 방치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글과 사진 - 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