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새로움
베트남에 머무르던 기간 내내 타이거 맥주를 즐겼다.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기 위해, 처음 이틀 동안 여러 맥주를 마신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즐겨 마시던 맥주는 테라였다. 테라에서 타이거 맥주로 넘어가는 이틀 정도의 과도기를 지나자, 타이거 맥주는 정말 맛있었다. 테라를 모두 잊을 만큼.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마셨던 맥주는 역시 테라였다. 베트남에서 마셨던 타이거는 내게 행복 맥주, 인생 맥주임에 틀림없지만, 내 마음은 익숙함에 대한 그리움도 차오르고 있었던거다. 첫 잔을 따르고, 첫 한 모금을 했을 때 내가 내뱉을 말은 "캬~ 역시 이 맛이지. 넌 그대로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테라 맥주에서 이상한 비린내와 쿵쿵함이 냄새와 맛으로 올라왔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수년간 마시던 맥주, 늘 맛있게 먹던 맥주가 36일만에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고작 36일이 몇 년을 눌러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베트남이 그리울 때 먹으려고 함께 사둔 타이거 맥주를 꺼내 마셨다. 그러자 내 마음 속에서 이런 탄성이 들렸다.
"캬~ 맥주는 이거지~ 기가 막히네."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익숙함이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은 거부하려고 하는구나. 새로운 것은 언제나 익숙함과 견주어 판단하려고 하는구나. 완벽하게 뛰어난 새로움이 아니라면 익숙함을 이기는 것은 쉬운 게 아니구나.
익숙함이 이런 것인데, 왜 우리는 익숙한 지금을 탓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까. 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소망하며 현재를 탓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까. 맥주는 먹던 것이 좋고, 삶은 새로운 것이 좋단 말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타이거 맥주를 마시면서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수 년간 익숙해진 테라에서 타이거로 넘어갈 때는 거부감이 없었는데, 36일간 익숙해진 타이거에서 익숙한 수 년간의 테라로 넘어올 때는 왜 이토록 바로 거부감이 드는 걸까?"
정답은 '내 태도'였다. 테라에서 타이거로 넘어갈 때는, 내 마음의 치유가 필요했고, 베트남의 그 무엇이든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거부감 없이 즉시 타이거 맥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들어와 다시 테라를 마실 때는 어떠한 기꺼운 마음도 기쁜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난 익숙함을 새로움을 거부하는 무기로 사용하게 된거였다.
결국, 내 '마음 가짐'이라는 답에 또 다시 도달했다. 36일간의 베트남 여정에서 여러 번 만났던 그 단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