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32

첫번째 관문 더위

by 영순

베트남의 많은 것들이 완벽하게 나에게 맞을 리가 없다. 언어, 날씨, 음식, 사람, 호텔 그 모든 것이 다르다. 이것은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적응을 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경탄을 자아내는 풍경은 새롭지만 적응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에서의 삶은 특별한 소수의 것을 제외하면 전부 적응의 대상이 된다.




나에게 커다란 불편함을 가져오며 나를 막아선 첫 번째 관문은 더위였다. 10월 초순이었는데도 땡볕에서 느끼는 뜨거움과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에서 가장 더운 날씨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호텔에 인접해 있는 매우 가까운 식당에 걸어가는 그 짧은 2-3분 사이에도 티셔츠가 땀에 젖었다. 불쾌하고 짜증이 났다. 관광 명소에 가보기는 커녕 잠시 걷는 동안에도 땀이 비오듯 하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36일간 호텔 안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나는 더위를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순히 몸에서 느껴지는 불쾌함과 땀, 습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엄마를 닮아 어렸을적부터 체질적으로 땀을 많이 흘렸다. 더우면 언제나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송긍 송글 맺혔다. 손으로 땀을 닦거나 티셔츠의 팔부분으로 땀을 훔쳤다. 시간이 지나면 등도 젖어오고 땀냄새도 나기 시작한다.




친구들을 보면 나처럼 땀을 흘리지 않았다. 거의 내가 유일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병적으로 흘린 것은 아닌데, 나만 다른 존재 같았다. 모두가 백인인 사회에서 나 혼자 흑인인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돌이켜보면, 누구도 나한테 흑인이라며 놀리지 않았지만, 나는 늘 흑인 같았다.




"넌 땀을 많이 흘리는구나.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인가봐."와 같은 가벼운 말들에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땀이 나는 내 모습, 땀에 젖는 옷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엔 땀이 부끄러웠고, 그 다음엔 땀에 젖은 옷이 부끄러웠고, 그 다음엔 땀냄새가 부끄러웠다. 결국,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트남에서 많은 땀을 흘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더위가 그다지 싫지 않았다. 나 자신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베트남 현지인들은 햇빛을 가리느라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신기했지만, 나와 같은 외국인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즉, 성장과정에서 느낀, 나만 땀을 흘리는 소외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이다. 누구의 얼굴을 봐도 땀이 맺혀있었고, 옷이 왠만큼 젖어 있었다. 스쳐지나갈 땐, 그 인종에 걸맞는 땀냄새가 났다.




그렇다. 여긴 땀 흘리고, 땀에 젖고, 땀냄새 나는 흑인 사회였던 것이다. 내가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회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후, 나는 베트남을 떠날때까지 더위와 땀, 그리고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고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싫어했던 더위는 더위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운 곳에 와서야, 이전에 바라보던 것을 다시 보게되고, 이전의 시선과 느낌,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는 것, 비로소 과거의 사슬에서 풀려나는 자유가 아닐까. 그렇게 치유되는 게 아닐까? 내가 베트남에 오도록 만든 많은 고통들은 더위와 땀과는 전혀 상관없는 치명적이고도 중대한 일들이었지만,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통은 외부요인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도 있지만,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뜨거운 베트남 거리를 걷는다. 나의 고통들 중, 내가 만들어낸 고통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쉽게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마음껏 땀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