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온 문자
베트남에 온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때는, 여러가지에 적응도 하고, 한국에서의 일, 베트남에서의 생활을 곱씹으며 한창 치유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나는 베트남에 오기전, 20년간 쓰던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식이 치는 사고와 관련한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녀석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하면 안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다. 언니만 있는 아내에게, 남자의 사춘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여러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지독하게 준비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악의적이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생각에 꽂히면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괜찮다. 남편으로서 힘든 아내의 성향이지만, 결혼 생활 내내 나는 그것을 고치려고 한다거나, 아내와 갈등을 빚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내는 그것을 수백배 뛰어넘는 큰 장점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런 단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식의 사춘기가 시작되고 그것이 악화되기만 하는 과정에서, 나는 가장으로써 남자로써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아내에게 끝없이 부탁했고 적절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내는, 나의 말투가 가르치는 식이어서 싫다고 했고, 자신도 충분히 힘들다고 했고, 주변 엄마들한테 물어본 대로 잘 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돈 관련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여기저기서 물건을 훔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일주일 용돈 4천원이면 된다고, 필요한 건 자신이 다 사주니까 4천원 이상 주는 건 안된다고. 주변 언니들한테 물어봐도 그렇게 말했다고 하며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나는, 충분한 돈을 주고 거기에 맞게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내는 꽂힌 생각 하나로 끝까지 나랑 맞섰다. 녀석의 돈 문제, 절도는 점점 수위를 높여갔다.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전, 아내는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제발 다 해달라'고 했었다. 그동안 내가 한 모든 조언, 도움은 거부했는데, 살날이 1달 밖에 안 남은 말기암 환자(자식)를 나더러 완치시켜달라고 했다.
자식과 아내에 대한 분노, 미움 아니 증오는 극에 달했고, 나는 평생 그 둘을 안보고 살아도 한점 후회가 없을만큼, 자식은 끝을 모르고 치달았고, 아내는 내 말을 아예 듣지 않았다.
나는 울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마. 잘못 걸려온 전화겠지. 전화번호까지 바꾸었는데 누가 전화를 했겠어?" 하지만, 내 가슴은 이미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경찰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처럼.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가 바로 도착했다. "XXX 아버님이시죠? 저는 XXX 선배 XXX입니다.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단적이고 악마스러운 폭령성과 분노'를 매우 잘 알고 있다. 끝없이 설득하고 도우려하고 이해하고 옆에 있어주었던 남편과 아빠가 처절하게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식과 아내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 하고 싶은대로, 제 고집대로 했다. 무려 하루도 빠짐없이 2년간.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나는 견딜 수 없는 폭력성과 분노, 내면의 악랄함을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