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7
'매우 역겨운 맛이던 고수'가, 결국 '향기로운 고수'가 된 것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봤다. 인식, 감정, 뇌, 심리의 측면에서.
고수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인식'에 관한 것이다.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만약, 고수가 혐오스러운 맛이 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전국민이 아니,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먹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맛에 대한 느낌과 인식은 모두 다르기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인식'인 것이다. 접하는 모든 사람이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인식' 말이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눈 오는 영하 20도의 날씨에, 선천적 질병이 없는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 속옷만 입고 1시간을 서 있으면 춥다'라는 문장은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땀을 흘리며 더위를 느끼거나, 춥기는 커녕 쾌적하다고 느껴서 쭉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 '사실'은 정해져 있고, '인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인식'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어느 것이든 내가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인식'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어렸을 때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아버지를 평생 증오했던 사람이, 아버지의 말년에, 아버지의 사후에 그를 너무 사랑하게 되는 일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예전에는 전혀 안 먹던 음식인데 나이들어서 먹는 경우, 첫 인상은 별로였지만, 함께 지내면서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경우. '인식'이 변화하는 것의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긍정에서 부정으로 어느 방향이든 가능하다.
우리가 삶에서 힘들어하는 여러 고통들(사람으로 인한 고통, 일로 인한 고통,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고통, 기억으로 인한 고통들)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인식'의 영역에 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면, 변화된 '생각'이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 감정이 내 마음의 '느낌'을 이전과는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받아들여라. 놓아주어라. 내려놓아라.'라는 말을 핵심으로 하는 종교가 있다. 사실, 우리 일반인은 '고통'을 이렇게 한 번에 처리할 수 없다.
'고통은 선물이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 고통을 지고 따라라.'라는 말을 핵심으로 하는 종교가 있다. 사실, 우리 일반인은 '고통'을 친구처럼 대하며 의연하게 함께할 수 없다.
종교를 비난하며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보통의 우리는 고통을 그렇게 멋지게, 한번에, 친구처럼 대할 수 없다. 그저, '고통, 불행, 불운, 힘듦' 그 모든 것들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고, 작은 노력과 변화로 조금씩 변화시키자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