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48

고수 5

by 영순

다음 날 아침에 먹은 고수에서는 전날 먹은 독하고 거부감 드는 맛에서 20-30%는 완화된 맛과 향이 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하루 사이에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다니.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고수는 참 대단한 채소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식당 건너편에 반미 가게가 보였다. '반미'란 베트남에 맞게 만들어진 바게트 안에 채소와, 소세지, 돼지 고기 등을 특유의 소스와 함께 넣은 '베트남식 바게트로 만든 샌드위치'다. 완전히 배가 부른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고 다음 식사 한끼를 빵으로만 먹기는 아쉬워서 바로 반미를 먹어보기로 했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진을 가리킨 후 빵이 준비되길 기다렸다. 만드는 과정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보이고, 뻔한 채소를 대충 넣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는 빵인데, 맛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바게트의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매우 부드러웠다. 정말 '겉바속촉'이었다. 게다가, 소스는 특유의 맛있는 맛이 나는데 어떻게 표현을 못할 정도로 맛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은 향이 독특하게 나서 빵, 야채, 고기, 소스를 완벽하게 어우러지게 만드는 맛이었다. 씹다보니 무슨 채소 같았다. 한참을 씹다보니, 아뿔싸. 고수였다. 빵을 열어보니, 거기엔 고수가 들어 있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고수인지도 모르고, 빵, 야채, 고기, 소스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맛있는 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고수라니. 갑자기 살짝 예민해졌다. 그래서, 다시 한입 베어물고 천천히 씹어보았다. 결과는 같았다. 너무 맛있는 맛이 났다. 깻잎은 낼 수 없는, 당귀와 방풍, 미나리, 쑥갓이 도저히 낼 수 없는 아주 고급지고 화려한 맛있는 향이 배어 나왔다.



무릎을 쳤다. 열쇠는 이거였다.




고수만 먹으며, 고수에만 적응하려 하니, 고수에만 온통 마음이 가게 되고 그것이 나를 힘들게 했던 거다. 다른 맛있는 것들과 어우러지면, 고수도 우리가 알던 고수가 아닌 것이 되는 거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삼겹살을 먹을 때, 매운 고추와 아린 마늘을 넣지만, 그 맛은 고기와 쌈장과 상추와 어우러져 강한 맛이 모두 중화되는 것, 그것이 비법이었던 거다. '삼겹살을 먹을 때 쌈을 싸먹는 것'에 이미 삶의 힘든 여정을, 우리에게 오는 고통을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들어 있었던 거다.




고수를 먹을 때 꼭 고수만 먹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고추만. 마늘만. 그렇게 따로 먹어서 거부감 들게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정말 고통스러운 일, 사람, 시간이 다가올 때, 다른 일도 하고, 다른 사람도 만나고, 다른 시간도 가지는 것이 정답인거다.




하지만, 온통 고통을 일으키는 그 자체에만 함몰되어서, 다른 것을 모두 거부하고 살았으니, 그 고통은 더욱 또렷해지고, 그 느낌과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던 거였다.




갑자기 신이 났다. 마음이 너무 들떴다. 점심과 저녁에 먹을 고수의 맛이 어떨지 생각하니. 귀국해서 고통스러운 여러가지들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할 생각을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