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47

고수 4

by 영순

두번째로, 고수에 도전하기 위해 간 식당에는 고수가 나오지 않았다. 고수를 위해서 매번 같은 식당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수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식당을 다시 나오는 것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게 억지로, 정한 대로 '싫은 것'을 시도하는 것은 내 마음에 역효과를 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식당에서 대부분의 메뉴는 거의 항상 신선한 야채가 곁들여져 나온다. 식당마다 주는 야채가 모두 다르다. 두번째 식당에서 준 채소에는 못보던 것이 섞여 있었다. 그 채소에서는 고수와는 결이 또 다른 독특하고 강한 향이 났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채소는 타이바질이라는 것이었다. 이 채소는, 고수 쪽 라인이 아니라, 깻잎, 당귀, 방풍, 미나리 쪽이었다. 먹다보면 적응이 가능할 것 같은 그런 채소 말이다.




그날 마지막으로 간 식당에서는, 또 다시 강한 향이 나는 채소를 먹게 되었는데, 그것의 이름은 자소엽이었다. 깻잎처럼 생겼는데 향이 무척 강하고 독특했다. 이것 역시, 화장품 냄새가 나는 고수 쪽 라인이 아니라, 반대쪽 라인이었다.




이렇게 나는, 아침에는 고수, 점심에는 타이바질, 저녁에는 자소엽을 먹게 되었다. 고수에 도전하고 적응하기 위한 계획이 어찌보면 갓길로 빠진거였지만, 이것이 결과적으로 고수로의 적응을 더 쉽게 해준 요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베트남 음식을 마음껏 먹으려면, 고수 말고도 적응해야 하는 채소가 더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갯수가 많아져서 더 어려워진 거 같지만, 정확한 이름도 모르고 맛도 구별 못하는 그 혼란함 속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적응할 수도 있는 터였다.




타이바질을 먹을 때는, 고수에서 나는 비누향이 나지 않아서 약간은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는 충분히 좋아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소엽을 먹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이것은 깻잎의 확장이네. 더 강하긴 하지만." 그렇게, 고수의 맛보다 제법 낫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채소 이름도 모르고, 이맛 저맛이 섞여서 정신 못차렸을 때이긴 하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고수를 먹었을 때, 고수에 대한 거부감이 꽤 내려간 상태였다. 만약, 고수만을 먹으며 좋아하려고 노력했다면, 오히려 고수의 맛에 너무 집중하게 되고 예민해져서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지 모른다. 그런데, 다른 독한 채소를 먹고 나니 모든 것에 대한 장벽이 낮아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 채소들은 어쨌든 적응해야 될 것, 베트남 음식은 응당 이렇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거 같다.




내 삶을 돌아본다. 무언가가 큰 고통을 주게 되면,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온통 그것만 생각했던 시간들. '고수'같은 그런 고통은 잠시 미뤄두고, 다른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거부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다른 삶에서 오는 기쁨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을.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난 고수도 먹고, 타이바질도 먹고, 자소엽도 먹고 있었다. 좋아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무기력하게 하나의 고통(고수)에 처절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지금의 이 훈련을. 귀국하면, 인생이라는 진짜 대회가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