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46

고수 3

by 영순

고수에 적응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3일의 시간을 주었다. 그 3일간 나는 과거를 떠올리며 물음표를 하나 던지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려 한다.




깻잎과 당귀를 처음 먹자마자 내가 싫어하는 향이라 다시 먹기를 거부했는데, 지금은 둘 모두 너무 즐겨먹는 것 사이에 '인생의 해답'이 있지 않을까?




'싫음'에서 '좋음'으로 바뀐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싫은' 일, '싫은' 사람, '싫은' 경험, '싫은' 고통, 그 모든 것을 '좋은'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것은 어쩌면 고수라는 채소 하나에 적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 베트남에 온 이유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기 직전에 베트남에 와서 치유를 받고 가려했지만, 무너진 이유를 알아낸다면 단순한 치유를 하고 귀국하는 것이 아니라, 만능키를 가지고 귀국하는 것이 될테니.




깻잎과 당귀의 싫음과 좋음 사이에는 분명, '재도전'이 있었을 것이다. 첫 경험 이후로 두번 다시 먹지 않았다면, 그것은 절대로 좋아질 수 없다. 왜냐하면, 첫 경험이 나빴기 때문이다. 결국, 좋아졌다면, '싫음'에서 점점 '좋은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이동하려면, 다시 시도하는 '재도전'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 싫은 것도, 다시 접해야 좋아질 가능성이 열린다. 싫은 사람, 싫은 경험, 싫은 일을 그저 싫다는 이유로 두 번 다시 접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싫음'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끝없이 괴롭히고 고통을 가한다.




싫었던 것을 '두 번째'로 접했을때, '첫 번째'와 똑같은 정도로 싫었다면, 그것은 결코 좋아질 수 없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경우에만, '세 번째'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 시도가 '두 번째' 시도와 정확히 같았다면, '네 번째'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시도를 거듭하게 되면서, 처음에 싫었던 감정이 점차 줄어들기에, 우리는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되고, 그 '싫음'이 '좋음'으로 바뀌는 과정을 허락하고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처음에는 싫었던 것도 얼마든 좋게 만들 수 있다. 처음에 싫었던 것을, '싫었던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 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온통 '싫음'으로 채우는 것 아닐까.




고수를 3일간 먹어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싫음'으로 끝내지 않고 '좋음'으로 끝낼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설사 실패해도, 후회 없을테니. 다시 시도하고 노력했던 내 모습이 기억나 뿌듯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