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52

삶의 비연속성

by 영순

단 한 달간만이라도, 사춘기 자식이 치는 사고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베트남에 온 일주일만에 처음으로 온 전화, 그 뒤이어 온 문자는 '그 소식'인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는 정말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을 만큼 강력했다.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한테 지금 전화가 한통 왔는데 가슴이 벌벌 떨려서 안 받았어. 그리고 뒤이어 이런 문자가 왔어. 니가 형수한테 알아보고 처리 좀 해줘. 휴... 이제 겨우 겨우 치유되고 있는데, 이게 뭐야. 내가 베트남 와서까지 이 자식 사고치는 소식을 듣고 처리해야 해? 부탁 좀 하자. 정말 돌 것 같다. 다 때려 부수고 싶어."




그리고는 받은 문자를 그대로 전송했다.


"XXX 아버님이시죠? 저는 XXX 선배 XXX입니다.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동생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나에게 카톡을 보낼때까지 걸린 1시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웠다. 베트남에 오기 전, 자식에 대한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순도 100%의 분노, 영원히 변하지 않을 감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 나는 실제로 녀석에게 그리 말했었다.




녀석의 사춘기는 평온하던 가정에 어느 날 슬며시 찾아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에서 찾아온 단 하나의 숙제가 아니다. 그때는, 고객을 잃어버리고, 인수인계도 없이 그만두는 직원들 때문에 사업이 반토막 나고, 잠못들고, 고통받고, 괴로워 하던 시절이었다. 자식 아니어도 나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죽을 힘 다해서, 고객을 한 명 늘려 놓으면, 5명을 잃어버렸고, 언제든 자신이 떠날 때 자신만의 이유로 후임자를 구할 시간 조차 주지 않고 즉시 그만두고 연락을 두절했고, 그것이 번번히 내 사업을 반토막 냈다.




반감기는 중학교 생물시간에, 생식세포의 분열때 생기는 것으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힘들었을 때 나는 사업을 시작했고, 정확히 5명의 직원과 함께 5번의 반감기를 겪으며 결국 폐업을 했다. 가장 고통이 극심했던 때, 자식의 사춘기 역시 절정으로 치달았다.




인생은 연속성이 아니다. 하나를 처리하고 나면, 다음 것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사업으로 죽을 지경이었는데, 자식의 사춘기가 덮쳐왔다. 삶은 비연속성이다.




베트남에서 7일동안 치유를 이어가고 있는데, 36일간의 치유과정이 모두 완성되기 전에, 자식이 친 사고로 인한 전화와 문자가 내게 왔다. 삶은 비연속성이다.




한꺼번에 다가오는 것들,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모두 막아내야 한다.




동생에게 문자가 도착했다.


"형. XX가 선배 무리들한테 협박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돈 갚으라고. 빌린 돈이 없는데, 그 아이들의 논리에 따라 협박을 받나봐. 사채업자들이 괴롭히는 것과 똑같은 양상이야."




보통의 부모라면, 이런 문자를 받으면 자식 걱정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식을 구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난 아니다. 내 아이는 협박받는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라, 온갖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그들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끝없이 문제를 일으킨 같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범죄집단으로부터 협박을 받는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 범죄집단 내의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받는 구성원에 불과한 것이다.




내 가슴에 피어오르는 분노, 폭력성, 가학성, 복수심, 이런 것은 어떻게 해소해야 되는 걸까. 당장 한국에 가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전부를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주 오래도록. 내가 받은 고통을 충분히 돌려줄 수 있도록. 천천히. 그 모든 것을. 그게 무엇이라 하더라도. 그게 누구라도. 내가 받은 고통보다 더 끔찍하게 더 오래.